찰칵, 낙엽을 꺼낸다
아직 핏기 마르지 않은 부고 한 장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려 고양이, 라고 읽으며
1280X960 파인더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순식간에 지나가는 한 컷
고양이가 껍질 벗긴 장어 한 마리를 훔쳐 물고 달아난다
명산장어에서 한 칸 공터를 지나 오동도횟집까지
햇살을 파닥이며 바람이 재빨리 불고 간다
피복 벗겨진 고압선처럼
몸에서 꺼낸 한 줄기, 그림자가 시뻘겋게 감전되는
오후 1시 30분 저기 한 칸 빈 주머니에
지- 지- 직 섬광이 지나갔던 걸까
고요 속에 파들거리고 있는 그녀를 관통하여
찰칵, 낙엽이 진다
박유라
2017년 9월 24일 일요일
2017년 9월 7일 목요일
다보탑을 줍다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을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유안진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을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유안진
2017년 9월 4일 월요일
짝사랑
우연히 동승한 타인의 차
안전벨트로 조여오는 침묵의 힘
다리를 꼰 채 유리 속에 갇힌 상사
밀고 밀리며
스스로를 묶어내는, 살 떨리는 집중이여
최영미
-----
살 떨리는 집중이여.
설레면서도 기분 더러운 그것.
안전벨트로 조여오는 침묵의 힘
다리를 꼰 채 유리 속에 갇힌 상사
밀고 밀리며
스스로를 묶어내는, 살 떨리는 집중이여
최영미
-----
살 떨리는 집중이여.
설레면서도 기분 더러운 그것.
2017년 9월 2일 토요일
종소리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서정춘
여러 산 너머
가루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서정춘
2017년 9월 1일 금요일
나도 왕년에는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식당엔 사내들 몇이서 밥 대신 소주를 들이켜며
저마다의 왕년을 안주 삼고 있었습니다
나도 왕년에는 소주에 밥 말아먹던 시절 있었나요
사내들의 뒷덜미를 움켜쥔 그림자 흔들리고
불빛에 베인 눈시울은 붉다 못해 황량했습니다
쓰디쓴 왕년을 입 안에 털어넣으며
사내들은 헐거운 삶을 더욱 풀어놓았구요
쓰디쓴 밥알들을 입 안에 털어넣고
왕년인 듯 오래오래 씹고 또 씹었습니다
덧난 눈시울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강연호
나흘째 술.
그래도 오늘은 처음처럼 한 병 반을 마시고 끝냈다.
2017년 8월 29일 화요일
벽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잔에 빵 한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정호승
읽기는 쉽고 읽고 난 후에는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시에서 눈길을 떼어 현실을 바라보면 아쉽기만 할 뿐.
내가 이런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을텐데 바람만 커질 뿐.
그리고 빵이 먹고 싶어졌다.
2017년 8월 28일 월요일
살아 있어야 할 이유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 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는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 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
나희덕
오늘도 비가 왔다. 모든 것을 떨어져내릴듯한 기세로 많이도 오더라.
사실 떨어지는 것은 제 몸일 뿐이지만...
집 밖이 서늘한 촉촉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니
이제는 비 대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 금방 오겠다.
어느 사이트 게시판에 거의 매일 시를 모아 올려주시는 분이 있다.
시를 쉽게 찾아 읽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분이다. 고마운 분..
옛날에는 지루하기고 어려웠던 시가 요즘에야 겨우 읽힌다.
옛날에는 시인이 뭐 대단한 감상을 갖고 세상을 사는 줄로 알았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이해하기 더 힘들었는데,
다수의 간장게장 안티를 양산시켰던 '스며드는 것'을 쓴 안도현 시인이
사실 간장게장을 아주 맛있게 먹다가 그 시를 썼다는 인터뷰를 한 걸 봤다.
물론 지금도 잘 드시고 계신다고 하신다.
환상이나 선입견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임을 또 한번 깨달은 후에는
예전보다 시가 잘 읽힌다.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 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는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 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
나희덕
오늘도 비가 왔다. 모든 것을 떨어져내릴듯한 기세로 많이도 오더라.
사실 떨어지는 것은 제 몸일 뿐이지만...
집 밖이 서늘한 촉촉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니
이제는 비 대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 금방 오겠다.
어느 사이트 게시판에 거의 매일 시를 모아 올려주시는 분이 있다.
시를 쉽게 찾아 읽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분이다. 고마운 분..
옛날에는 지루하기고 어려웠던 시가 요즘에야 겨우 읽힌다.
옛날에는 시인이 뭐 대단한 감상을 갖고 세상을 사는 줄로 알았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이해하기 더 힘들었는데,
다수의 간장게장 안티를 양산시켰던 '스며드는 것'을 쓴 안도현 시인이
사실 간장게장을 아주 맛있게 먹다가 그 시를 썼다는 인터뷰를 한 걸 봤다.
물론 지금도 잘 드시고 계신다고 하신다.
환상이나 선입견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임을 또 한번 깨달은 후에는
예전보다 시가 잘 읽힌다.
2017년 8월 27일 일요일
감옥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 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들어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강연호
그러는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문단속 잘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 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들어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강연호
그러는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2015년 1월 3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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