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6일 수요일

요즘 듣는 노래들


  이번 앨범 수록곡들 다 좋지만 이게 가장 듣기 편안함.



  역시 편안한 멜로디, 그리고 서정적인 가사.



  요즘은 이런 올드스쿨이 좋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편안한 멜로디...



  조금씩 끓어오르다가 마침내 100도가 되는 과정.



  현재 PBR&B 장르의 선두.



  오랜만에 듣고 있는 트레이 송즈. 점점 얼굴이 크리스 브라운이랑 닮는 것 같다...

최근에 본 영화 두 편

  1. 스파이더맨 홈커밍

  '홈커밍'이란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스파이더맨의 마블 복귀작. 십대 소년의 유쾌함과 힘을 가진 히어로의 고민과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하는 자아가 즐겁게 뒤섞인 작품. 원작 스파이더맨과 이전 스파이디 영화들에서 뽑아낸 오마주가 관객을 더욱 즐겁게 한다. 그러나 오마주를 모른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없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가벼움으로 인해 앞으로의 활약상을 그려내기가 어렵게 된 것은 아닐지 염려된다. 2018년에 개봉될 인피니티 워는 절대 가벼울 작품이 아닐 것인데... 아니면 그 전에 속편을 제작해서 흐름을 살짝 바꿀 수도 있고.


  2. 덩케르크

  짧은 러닝타임과 조용한 고동. 전장에서 벌어지는 휴머니즘을 훌륭하게 압축한 작품. 액션신이 거의 없지만 오히려 전쟁의 본질과 삶의 무게감이 깊게 느껴진다. 별다른 대사 없이 인물을 담아내는 카메라 워크와 테이크만으로 이루어진 감정묘사가 탁월하며, 날카로운 배경음악이 철수 당시의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증도 매우 잘 이루어진 덕분에 역사를 알고 가면 더 재밌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형식 혹은 고요함을 바탕으로 둔 영화에 흥미가 없는 사람은 꼭 피해야 할 영화.... 영화관에서 보다가 자는 사람도 봤다. 또한 전쟁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피하는게 좋을 듯.

2017년 5월 8일 월요일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에 어색해



  그래서 그런건가.
  늘 어렵다니까.

페페가 죽다니...



  알트라이트에 희생당한 우리의 친구...
  세상 어디를 가나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아.

대선 투표를 하고 난 뒤 결과를 기다리며

 

  ... 그러나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스스로 계몽된 군주만이, 동시에 공공의 평화를 확보 하기 위해 잘 훈련된 수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는 군주만이 어떤 공화국도 감히 말할 수 없 었던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관해 너희들이 원하는 만큼 따져 보라. 그러나 복종하라!” 이렇게 하여 여기서 이상하고 예기치 않았던 일이 진행 된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고찰해 보면, 이러한 일의 진행 속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역설적이다. 시민적 자유의 정도를 한층 크게 하는 것은 국민의 정신의 자유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신의 자유에 넘을 수 없는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시민적 자유의 정도를 한층 적게 하는 것은 국민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 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때 이런 딱딱한 껍질 밑으로부터 자연이 가장 조심 스럽게 보호하는 삭을, 곧 자유 사상에의 경향과 소명을 계발하게 되면, 이것은 점차 국민 의 성격에 반작용하게 되고(이에 의해 국민은 점점 행동의 자유를 발휘하게 된다), 마침내 는 이 반작용이 통치의 원리에까지 미치게 되어 정부는 이제야 기계 이상인 인간을 그의 품 위에 어울리게 대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1784년 9월 30일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 I. Kant.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중 마지막 부분.


  인간이라면 스스로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지녀야하고, 이는 사유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를 포괄하는 인간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군주는 마땅히 이 자유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만일 군주가 그의 힘으로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 그로 인하여 이성의 공적 사용이 방해를 받는다면 그 군주는 시민의 이름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그러니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나에게는 이 말이 자신의 에고를 알처럼 깨고 나와서 지성의 사용을 날개삼아 이성의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2017년 4월 30일 일요일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요즘 나의 속을 상하게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착각이다.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리라고 생각하는 착각. 완전무결한 누군가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인도해줄 것이라는 착각. 각자의 특성이 인정받는 시기에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과도한 긍정사회의 말로인 것 같기도 하고.

  세살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리고 잇는 것들이 당연시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매 시대마다의 변화를 주도했던 계층도 각기 다르지만, 확실한 것은 단 한 사람만의 힘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신화난 위인전을 읽고 자란다. 다 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불세출의 누군가가 이룬 업적이나 생애를 듣고 다니며 스펙을 쌓으려 노력한다. 혹은 그 사람을 롤 모델로 지정하고 닮기 위해 애쓴다.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 사람이 이룬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개인이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고도로 사회화된 현대에서 그게 가능할런지... 혼자서 성공한 것 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연대를 이루고 있고, 그 연대에서 발현된 힘이 그의 발 아래를 받혀준다.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우상화를 거부한다. 70년대 급속한 산업화가 일어났을 때, 당시 박정희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낡은 통념을 거부한다. 그것은 영웅 한 사람이 이룬 것이 아니다. 많은 영웅들의 땀과 피가 한강으로 흘러들어 만들어낸 건축이다.

  그런데 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마저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하기를 원하는지, 참 속상하다. 우리는 인내하고 인내하면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또 실제로 그런 내일을 만들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 나는 오늘이 어제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예전에는 누릴 수 없던 것들이 이제는 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섰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비록 내가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사라질지라도, 다음 세대들은 우리가 노력하여 이룩한 결과들 속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 것이라고 확신한다.

  술 마시고 쓰는데 3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