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8일 화요일

Barry Jenkins, Moonlight



  2월 개봉 예정 영화표를 보다가 바로 꽂혀서 보았던 영화. 사실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더 보고 싶어서 개봉관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해당 작품을 보려면 이수까지 지하철을 타고 사오십분은 가야해서 반쯤은 포기했다. 그런데 운이 참 좋게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영화관에서 아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게 아닌가! 또한 <문라이트>를 선개봉하여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까지 곁들여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주저없이 카드를 꺼내서 예매를 마치고,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남은 이틀의 기간이 내게 참 설레었던 순간이었다. 고작 영화 한 편에 뭐 그렇게 설렜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래 그렇다, 나도 왜 그렇게 설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색다른 작품을 남들보다 먼저 접한다는 것에서 나온 기대감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영화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니 슬펐다고 해야할까. 영화가 보여준 서정적인 감정들은 아름다웠지만 그 감정을 요리한 영화 속 인물들의 상황은 전혀, 아름답지가 않다. 슬픔의 미학을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영화가 그만큼 훌륭했고, 내 언어감각이 그만큼 못하다.

  1. 영화는 3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주인공 '샤이론'의 어린시절을 보여주는 '리틀', 청소년기를 보여주는 '샤이론', 그리고 성인이 된 '블랙'. 차례로 세 파트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샤이론의 성장과 함께 커지는 그의 성적혼란이 매우 뚜렷하게 부각된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대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의 주제가 '인종'과 '성정체성' 두 가지인 것 같지만 실상 작품의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는 '성정체성' 하나뿐이다. 물론 흑인들의 게토와 아웃사이더가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마약과 주인공의 어머니가 등장할 때만 잠시 모습을 보일 뿐.

  2. 하지만 인종문제가 '흑인'과 '성정체성'의 신선한 결합을 엮어내기도 했다. 그동안 동성애자와 관련한 작품은 꾸준하게 등장했지만 그것이 흑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성의 혼란에 거친 흑인 게토의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샤이론이 겪는 고통은 가중된다. 이것이 동성애를 주제로 하는 다른 영화와 문라이트의 차이점이다. 사랑의 혼란 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의 냄새도 풍기는 것. 특히 마약냄시, 뒷골목냄시...

  3. 인상깊은 연출이 참 많았는데, 영화 제목처럼 푸르스름한 달빛이 샤이론을 종종 내리쬐고는 한다. 샤이론이 달빛을 받을 때는 그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때이고, 그 때만큼은 샤이론이 현실에서 벗어나 허무맹랑한 꿈을 꾼 것 같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천장을 바라보니 달빛대신 죽은 벌레들이 들어있는 낡은 형광들이 그를 비춘다. 또한 달빛을 닮은 푸른 형광등이 등장하는 순간에는 샤이론의 성격이 바뀌기도 한다. 소심하고 마른 소년에서, 큰 덩치를 가진 대범한 남자로, 얼음물과 함께.

  4. 하지만 역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3부에서 '블랙'이 된 샤이론이 케빈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씬. 케빈의 연락을 받고 가게를 찾은 샤이론. 그가 가게문을 열자 울리는 종소리가 마치 복싱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들린다. '지금 이 순간부터 경기시작!'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샤이론과 케빈의 재회는 경기의 긴장간만큼이나 아슬아슬하다. 샤이론이 찾아온 목적을 뻔히 아는 듯하면서도 속편한 이야기를 하는 케빈. 그러나 케빈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결국 가게에서의 대화를 통해 장소가 케빈의 집으로 옮겨지는 변화에도 긴장감과 감정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샤이론의 마지막 고백은 조용하게 일어난 작은 빅뱅이다. 케빈에 대한 솔직하고 절절한 자기고백을 보면서, 나까지도 참 서러웠다.

  5. 이동진 평론가가 <문라이트>에 대해서 평해놓은 글이 있다. 글을 보면서 많은 공감을 느꼈다. 검색은 구글.

  6. 그리고 <문라이트>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라라랜드>를 제치고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해프닝이 일어났으니...


  아카데미 측의 실수로 시상번복이 일어난 것. <라라랜드> 스태프들에게는 안됐지만 상황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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