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EBS에서 한국대중음악상 중계를 해줬다던데, 그래미도 그렇고 아카데미도 그렇고 시상식을 보면 지루할 뿐인 나는 역시 한대음 시상식 중계까지 패스했다. 그래도 나중에 찾아보니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이번 시상식은 한 번 봤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고.
1. 넉살. 솔직히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리스너들이 넉살이 상 하나정도는 받지 않을까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뭐 결과가 나왔다시피, 최우수 랩/힙합 음악상은 비와이 'Forever'에게 밀렸고, 최우수 랩/힙합 앨범상은 화지 'ZISSOU'에게 내줬다. 음악상 시상자는 넉살이 속한 비스메이저의 수장인 딥플로우였는데, 지난번 자신이 그랬듯이 이번에는 넉살이 후보에 올라서 비스메이저의 식구들을 모두 데려왔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콩 볶아먹는 홍진호를 연상케하듯 뭐.... 딥플로우는 시상식에서는 '넉살아 괜찮아'라고 했고 나중에 페이스북으로 자신이 받은 상을 인증하여 넉살을 조롱했으며, 넉살은 시상식에선 웃었지만 딥플로우의 페북을 보고는 대단하다며 결국 욕을 했다. 이 형들은 참 귀엽게들 노신다.
2. 비와이의 'Forever'가 이렇게나 사랑받을 줄 몰랐다. 대중적인 인기도 그렇고 한대음에서의 수상도 그렇고. 어느 대머리 아저씨의 말처럼 모든 시상에는 위원들의 기호가 포함되어 있다지만, 그래도 이정도씩이나? 나는 Forever를 쇼미더머니5를 생방으로 봤는데, 처음 봤을때는 혁신적으로 느껴졌다. 대단한 무대였고. 하지만 대중적인 입맛에 잘 맞는 비트에 화려하고 빠른 래핑이라는 게, 너무 반칙이지 않나. 나에게는 조미료를 크게 세 스푼 정도는 넣은 김치찌개같은 노래였다. 당시에는 혁신적이라고 느껴졌는데, 그건 내가 그 때 너무 몰랐던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아무튼 그래서 넉살이 아쉽다는 그런 주절거림.
3. 이센스가 출소 후에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비추었다. 작년에는 올해의 앨범 부분 수상자였지만(그리고 당연히, 감옥에 있어서 직접 수상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시상자로 참석했다. 이 사람은 멀쩡한 정신상태임에도 취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클럽 공연을 보러갔다가, 당시 공연자였던 이센스가 본인 노래만큼 꽐라가 되어서 토하고 난리였다는 증언을 본 적이 있다. 출소 이후에 정신을 차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말이 감명깊었다.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다.' 다른 어떤 멋진 말도 아니고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담담한 말이 왜 이렇게 감동적일까. '양화대교'를 말 한마디로 압축해놓은 것 같은 말이었다.
4. 올해의 앨범 수상은 조동진의 '나무가 되어'. 내가 생각한 팝 음악과는 거리가 아주아주 먼 앨범이다. 하지만 앨범 안에 여러 장르들을 녹여 혼합한 용광로같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앨범이었다. 사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굉장히 멀어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예술은 어렵구나.
5. 이번 한대음 시상식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역시 이랑의 트로피 경매일 것이다. 이랑이 상을 받자마자 즉각 경매로 현찰 50만원에 상을 팔았는데, 이건 아티스트적 사고가 아니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을 받고나서 바로 팔아버린 것이 마음에 안든다는 사람들도 물론 많다. 하지만 이랑은 상을 팔아버린 이유에 대해서 미리 충분한 설명을 마쳤다. 상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한대음이 어마무시한 영향력을 가진 시상식도 아니니, 상은 그저 명예의 껍질을 뒤집어 쓴 장식용 악세서리에 불과하지 않나. 상을 준 사람들의 정성이나 의중은 고려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은 원래 이랑이 노래 잘 만들어서 받은 정당한 댓가고, 이랑이 받은 그 순간부터 이랑이 상의 주인인 것이니 뭘 하든 그녀의 마음이었던 것. 나는 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퍼포먼스가 참 재밌었고, 50만원을 10초만에 벌어드린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6. 그런데 왜 트위터를 해서.... 인터넷 전반에 퍼진 성별갈등이 오프라인에까지 등장할 만큼 격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 일뭐 사이트가 활동했던 것을 거의 베끼듯 똑같이 활동하는 모양새라서 많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식이면 자기들만의 리그가 될 뿐인데.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매초를 낭비하시는지 가엽기도 하고... 아무튼 이랑이 본인의 트위터에 그쪽 세계의 언어와 사상을 참 담백하게, 그것도 반복을 통한 강조의 효과를 주면서까지 표현을 했기에 논란이 되는 중이다. 이랑이라는 아티스트가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기에 크게 논란이 되는 것 같진 않다. 내가 그녀의 트위터를 보면서 느낀 건... 참 속 좁다는 것. 하기야 논란의 중심이 되는 입장에서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졌겠지만, 왜 수상 논란을 젠더 논란으로 바꾸었는지 모르겠고, 자신을 칭찬하는 글들만 RT를 하는 것도 그렇고... RT한 글들 수준은 아쉽고.. 진짜 예전 ㅇㅂ 전성기때랑 어쩜 그렇게 똑같이 닮아있는지. 혹시 ㅇㅂ운영자가 2호점을 차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든다.
오늘의 술은 오비 프리미어. 술을 마시고 쓴 주저리가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