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한 너무나도 유명한 일본의 멜로 영화. 2004년 국내에 처음 개봉할 당시만 해도 큰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이후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게 된 영화 중 하나.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2004년 개봉할 당시 바로 그 때였다. 처음 느껴본 난해한 제목과 함께 당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다른 영화의 아주 걍렬한... 타이틀 덕분에 그 둘을 같이 묶어서 외워버린 기억이 있다. 10년이 흘러서야 찾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조그만 새싹일 당시의 일이다.
1. 영화 도입부부터 시작해 영화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나레이셔는 내내 담담한 어조로 흘러간다. 영화의 담백한 맛을 살려주는 기법. 인물 대신의 풍경과 함께 나레이션을 흘려 보내는 연출은 유독 일본 작품에서 많이 보이는 듯.
(간혹 이런 나레이션 연출을 금전적인 문제로...이용해 먹는 대표적 작품 역시 일본작. 은혼이라던가...은혼...이라던가....)
2. 사강의 책이 영화의 큰 틀로서 나온다. 조제란 이름의 출처와 영화의 줄거리 모두 사강의 책에서 나왔기 때문. 줄거리는 책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책을 따라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원작의 소설은 영화와 엔딩이 다르기 때문에, 영화만이 사강의 책을 따르고 있다.
3. 장애에 대한 나쁜 인식 때문에 늘 해저 깊은 바다 속에서 헤엄칠 수 밖에 없던 조제는 스스로를 물고기라고 부른다. 영화 타이틀의 물고기는 조제 자신을 가리키는 것. 그래서인지 조제는 영화 말미에 물고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4. 조제가 물고기에 집착하는 것은 이별의 전조라고 해석해본다. 스스로를 물고기라고 부르는 조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다시금 스스로를 물고기라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 물론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깊은 해저 속 조제와 사랑을 경험한 조제는 활동하는 수면이 다르겠으나, 결국 둘은 어쨌거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인걸.
5. 조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호랑이를 보러 오고 싶었다고 말한다. 호랑이는 조제에게 있어 장벽이나 턱과도 같은, 그간 넘지 못했던 장애물이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턱을 넘고 싶었던 것.
6. 카나이 하루키는 은근히 맥거핀으로 쓰이는 눈치. 엄청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 얘가 없었더라도 사건은 잘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아무리 사랑했던 사이라도 언젠가는 식어버리기 마련, 이라는 주제를 담백하게 뽑아낸 영화. 비슷한 영화로 <500일의 썸머>가 생각났는데, 둘 다 헤어지고 바로 교제를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ㅂㄷㅂㄷ.... 다음에 한 번 비교해보고 싶은데 시간이 있을지.
8. 멜로는 역시 일본.
2014년 8월 26일 화요일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J.마키에 그러버의 <나비효과>
디렉터스 컷.
사람들이 추천하는 영화는 대부분이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류 영화들이다. 한 사람의 인생의 성공 스토리를 담아내거나,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나 혹은 잔잔한 연애 소설 같은 영화. 추천글 중 열에 여덟은 감동을 선사하는 드라마를 추천한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만큼 쉽게 질리는 것도 없다.
감수성이 풍부하야 눈물이 많은 사람은 몇번을 보던간에 낭만적이고 야리꾸리한 기분에 푹 젖을 테지만, 나같이 따분한 걸 싫어하는 족속은 드라마류의 영화를 몇편이고 연속해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간중간마다 호러나 스릴러, 액션 영화 등을 부러 찾아보는 편이다. <나비효과>도 사실 그래서 찾아본 영화이다. 이마저도 극장판의 엔딩은 감동이 밀려온다기에, 일부러 감독판을 찾아보았다.
1. 도입부부터 강렬하다. 관객의 주의를 끌기에 알맞게 처음부터 문을 쳐부수고 나온다...
이런 강렬한 도입은 자칫 용두사미의 영화일 경우, 그 지루함을 더욱더 증폭시킬 수 있으나 다행히도 영화는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2.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연출로써 중간중간 큰 효과음과 함께 장면이 순식간에 바뀌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다만 이는 영화 초입에만 몇 번 나온다. 카오스 이론을 따온 영화답게, 효과음과 함께 바뀌어 나오는 장면들 역시 카오스 상황을 담아내고 있다. 무언가가 불타고, 터지고, 목을 조르고...
3. 영화는 주로 주인공을 포함한 4인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이 모든 이들의 행복한 삶을 지켜주고 싶어 한다. 다만 의아했던 것이, 이들중 3인방은 아주 어릴때부터 알고 지낸 가까운 사이지만, 중간에 껴든 '레니'라는 이름의 인물은 조금 뜬금없다. 영화를 이끄는 중요 요소이기는 하나, 비행기 조립이나 뾰족한 물건으로 사람을 찌르는 것이나, 무언가 겉도는 느낌. 약간 어색하고... 맞물리지 않는 인물같다.
4. 주인공의 아버지가 말하듯, '신을 거스러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버지이자 경험자로써의 조언이었으나, 주인공은 급한 상황인지라 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이후 주인공이 능력을 쓰면 쓸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한다.
5. 능력에는 매개체가 필요한데 주인공에게 있어서 일기장이 바로 그 매개체가 되겠다. 주인공이 어릴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는 것이 영화의 진행을 가능하게 해준 전제조건. 만약 일기를 안썼더라면 영화고 뭐고 없었겠지...
6. 영화 내내 운명론적 분위기가 감돈다. 어떻게 하더라도 결국 전부 행복해지는 미래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주인공의 욕심이 과한 탓도 있지만, 제목이 <나비효과>인 것 치고는 너무 운명론적.
7. 주인공은 꼭 죽어야만 했는가? 굳이 태아때로 돌아가 죽어야만 했는지도 의문. 물론 남아있는 비디오 테잎이 태아때 것밖에 없다면 모를까, 굳이 죽지 않아도 미래를 바꿀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감독판은 결말이 너무 극단적이다. 그래서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개운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추천하는 영화는 대부분이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류 영화들이다. 한 사람의 인생의 성공 스토리를 담아내거나,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나 혹은 잔잔한 연애 소설 같은 영화. 추천글 중 열에 여덟은 감동을 선사하는 드라마를 추천한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만큼 쉽게 질리는 것도 없다.
감수성이 풍부하야 눈물이 많은 사람은 몇번을 보던간에 낭만적이고 야리꾸리한 기분에 푹 젖을 테지만, 나같이 따분한 걸 싫어하는 족속은 드라마류의 영화를 몇편이고 연속해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간중간마다 호러나 스릴러, 액션 영화 등을 부러 찾아보는 편이다. <나비효과>도 사실 그래서 찾아본 영화이다. 이마저도 극장판의 엔딩은 감동이 밀려온다기에, 일부러 감독판을 찾아보았다.
1. 도입부부터 강렬하다. 관객의 주의를 끌기에 알맞게 처음부터 문을 쳐부수고 나온다...
이런 강렬한 도입은 자칫 용두사미의 영화일 경우, 그 지루함을 더욱더 증폭시킬 수 있으나 다행히도 영화는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2.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연출로써 중간중간 큰 효과음과 함께 장면이 순식간에 바뀌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다만 이는 영화 초입에만 몇 번 나온다. 카오스 이론을 따온 영화답게, 효과음과 함께 바뀌어 나오는 장면들 역시 카오스 상황을 담아내고 있다. 무언가가 불타고, 터지고, 목을 조르고...
3. 영화는 주로 주인공을 포함한 4인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이 모든 이들의 행복한 삶을 지켜주고 싶어 한다. 다만 의아했던 것이, 이들중 3인방은 아주 어릴때부터 알고 지낸 가까운 사이지만, 중간에 껴든 '레니'라는 이름의 인물은 조금 뜬금없다. 영화를 이끄는 중요 요소이기는 하나, 비행기 조립이나 뾰족한 물건으로 사람을 찌르는 것이나, 무언가 겉도는 느낌. 약간 어색하고... 맞물리지 않는 인물같다.
4. 주인공의 아버지가 말하듯, '신을 거스러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버지이자 경험자로써의 조언이었으나, 주인공은 급한 상황인지라 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이후 주인공이 능력을 쓰면 쓸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한다.
5. 능력에는 매개체가 필요한데 주인공에게 있어서 일기장이 바로 그 매개체가 되겠다. 주인공이 어릴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는 것이 영화의 진행을 가능하게 해준 전제조건. 만약 일기를 안썼더라면 영화고 뭐고 없었겠지...
6. 영화 내내 운명론적 분위기가 감돈다. 어떻게 하더라도 결국 전부 행복해지는 미래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주인공의 욕심이 과한 탓도 있지만, 제목이 <나비효과>인 것 치고는 너무 운명론적.
7. 주인공은 꼭 죽어야만 했는가? 굳이 태아때로 돌아가 죽어야만 했는지도 의문. 물론 남아있는 비디오 테잎이 태아때 것밖에 없다면 모를까, 굳이 죽지 않아도 미래를 바꿀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감독판은 결말이 너무 극단적이다. 그래서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개운하지도 않고.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이상과 현실의 거리, 조 존스턴의 <옥토버 스카이>
최근 즐겨보는 예능프로가 있다. jtbc에서 하는 비정상회담. 패널들도 전부 매력적이고 mc들 특히 유세윤의 역량이 무지막지하게 드러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에서 3화쯤이었던가,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을 두고 비정상인가, 정상인가를 토론해보았다. 사연의 남자는 7년째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었고, 패널들 대부분은 비정상이라고 답했다. 7년동안이나 했으면 슬슬 현실을 깨닫고 본인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사람은 7년이라는 시간을 공부하며 고민했지만 우리는 종종 몇개월도 안되어서 본인의 꿈과 현실에 대하여 줄타기를 하고는 한다. <옥토버 스카이>는 그런 사람들의 영화이다.
1. 제이크 질렌할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어필이 될 수 있는 영화이다. 질렌할은 매력적이면서도 고민하는 소년 주인공의 역할을 잘 표현해내어 영화에 감칠맛을 더했다.
2. 크리스 쿠퍼는 아버지 역이 정말 잘 맞는다. 특히 꼰대...라고 불릴 만한 전통적인 아버지상. <아메리칸 뷰티>에서도 드러난 그의 아버지 연기란....
3. 철없어 보이는 개구쟁이 소년이 위성을 한 번 본것으로 곧바로 로켓 발사 작업에 돌입한다는 것이 조금 벙쪘다. 고작 딱 한번, 물론 그 때 당시의 위성의 위엄이야 지금보다도 더 했겠지만 고작 한 번 본 것으로 꿈을 갖고 로켓을 만든다는 것은 조금 어색하게 보였다.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여자대신에 로켓에 반한 거라고 쳐두려 한다.
4. 소년의 성장이나 꿈을 쫓는 영화는 늘 그렇듯 도우미가 있다. 여기서는 그의 세 친구들과 선생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무정해보이는 아버지도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는데, 이는 영화의 감동적인 면을 더한다.
5. 이제껏 소년을 보고 광부나 되라던 아버지가 소년의 꿈을 지원해준다는 것은 굉장한 감동 포인트지만, 조 존스턴은 이 장면을 과장되어 억지로 표현하지 않았다. 흔한 한국영화의 산파처럼 음악이 깔리고, 인물의 모습이 점차 클로즈업되며, 굵은 눈물을 흘리는 그런 연출보다는 약간의 조크로서 감동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연출을 보여준다.
6. 탄광은 일종의 덫과 같다. 또한 아버지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탄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영원히 아버지의 그림자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주인공은 절대 탄광으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을 한다.
7. 그러나 결국 어쩔 수 없이 광산으로 가게 되는데, 그때가 주인공에게 있어 가장 비참했던 시기로 묘사된다. 산불 누명보다도 더.
8. 영화는 약간 하이틴스러운 모습도 보이는데,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한 명의 소녀 때문. 거기에 도로시라고 하는 철없는 소녀 한명이 곁들여져서 10대 소년의 사랑 심리가 조금 엿보이는 연출.
9. 마지막 로켓은 아주 높이 솟아오른다. 소년과 그의 아버지가 어깨동무를 하고 로켓을 바라보는 것과 마을 사람들과 도움을 준 선생님이 병실에서 로켓을 바라보는 연출은 보다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한국 영화들이 좀 배웠으면 하는 부분.... 괜히 산파로 끌고가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여운이 보다 더 길게 남는다.
10. 가족들 중 형은 유일하게 한 게 없다.
1. 제이크 질렌할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어필이 될 수 있는 영화이다. 질렌할은 매력적이면서도 고민하는 소년 주인공의 역할을 잘 표현해내어 영화에 감칠맛을 더했다.
2. 크리스 쿠퍼는 아버지 역이 정말 잘 맞는다. 특히 꼰대...라고 불릴 만한 전통적인 아버지상. <아메리칸 뷰티>에서도 드러난 그의 아버지 연기란....
3. 철없어 보이는 개구쟁이 소년이 위성을 한 번 본것으로 곧바로 로켓 발사 작업에 돌입한다는 것이 조금 벙쪘다. 고작 딱 한번, 물론 그 때 당시의 위성의 위엄이야 지금보다도 더 했겠지만 고작 한 번 본 것으로 꿈을 갖고 로켓을 만든다는 것은 조금 어색하게 보였다.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여자대신에 로켓에 반한 거라고 쳐두려 한다.
4. 소년의 성장이나 꿈을 쫓는 영화는 늘 그렇듯 도우미가 있다. 여기서는 그의 세 친구들과 선생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무정해보이는 아버지도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는데, 이는 영화의 감동적인 면을 더한다.
5. 이제껏 소년을 보고 광부나 되라던 아버지가 소년의 꿈을 지원해준다는 것은 굉장한 감동 포인트지만, 조 존스턴은 이 장면을 과장되어 억지로 표현하지 않았다. 흔한 한국영화의 산파처럼 음악이 깔리고, 인물의 모습이 점차 클로즈업되며, 굵은 눈물을 흘리는 그런 연출보다는 약간의 조크로서 감동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연출을 보여준다.
6. 탄광은 일종의 덫과 같다. 또한 아버지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탄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영원히 아버지의 그림자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주인공은 절대 탄광으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을 한다.
7. 그러나 결국 어쩔 수 없이 광산으로 가게 되는데, 그때가 주인공에게 있어 가장 비참했던 시기로 묘사된다. 산불 누명보다도 더.
8. 영화는 약간 하이틴스러운 모습도 보이는데,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한 명의 소녀 때문. 거기에 도로시라고 하는 철없는 소녀 한명이 곁들여져서 10대 소년의 사랑 심리가 조금 엿보이는 연출.
9. 마지막 로켓은 아주 높이 솟아오른다. 소년과 그의 아버지가 어깨동무를 하고 로켓을 바라보는 것과 마을 사람들과 도움을 준 선생님이 병실에서 로켓을 바라보는 연출은 보다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한국 영화들이 좀 배웠으면 하는 부분.... 괜히 산파로 끌고가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여운이 보다 더 길게 남는다.
10. 가족들 중 형은 유일하게 한 게 없다.
국민은 설 곳이 없다.
보궐선거에서 야당은 대패했다. 어차피 예견된 일이지만... 하지만 야당이 이겼다고 해서 더 나아졌으리라 보기도 힘들다. 안-김 체제가 그대로 이어졌을테니.
이제 안-김이 물러선 상황에서 새정치는 다시 친노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친노는 새누리당이 공격하기 제일 좋은 먹인감인지라, 야당 상황이 좋아질 가능성은 없을듯.
이와중에 기가 막힌 것이, 세월호 사건이다. 사건이 벌어진지 몇달이 지났음에도 유가족들에 대한 따뜻한 포옹이라고는 정치판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여당은 유가족들에게 그만 물러나라고 하는 상황이고, 야당은 유가족들을 위하는 척 하면서 정작 헛물을 켜고 있는 상황. 그 누구도 유가족들을 위로해주려는 마음은 없어보인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국가의 권력을 쥐는 자들이 이제는 권력을 쥐어준 자들을 기만하는 꼴이다. 뭐 원데이 투데이 하는 일도 아니지만, 이런 큰 재난 상황 마저도 슥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게 정말 한국의 거대한 두 당이란 말인가.
이제 안-김이 물러선 상황에서 새정치는 다시 친노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친노는 새누리당이 공격하기 제일 좋은 먹인감인지라, 야당 상황이 좋아질 가능성은 없을듯.
이와중에 기가 막힌 것이, 세월호 사건이다. 사건이 벌어진지 몇달이 지났음에도 유가족들에 대한 따뜻한 포옹이라고는 정치판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여당은 유가족들에게 그만 물러나라고 하는 상황이고, 야당은 유가족들을 위하는 척 하면서 정작 헛물을 켜고 있는 상황. 그 누구도 유가족들을 위로해주려는 마음은 없어보인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국가의 권력을 쥐는 자들이 이제는 권력을 쥐어준 자들을 기만하는 꼴이다. 뭐 원데이 투데이 하는 일도 아니지만, 이런 큰 재난 상황 마저도 슥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게 정말 한국의 거대한 두 당이란 말인가.
미국 영웅주의의 파괴,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
누구누구가 꼽는 최고의 호러영화에 늘 순위권을 차지한 영화 <미스트>. 개인적으로 호러 영화는 찾으면서까지 즐겨보는 편은 아닌지라 <미스트> 역시 이름만 듣고 오랫동안 감상을 미뤄온 작품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말하는 충공깽... 결말이 임팩트가 강한지라 그 결말로 영화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이 영화는 결말로만 평가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1. 영화 초입부분, 주인공이 그림을 완성시켜가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마치 어느 영웅의 찬란한 뒷모습을 연상시킨다. 초반부터 이 영화가 말해주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그림.
2. 주인공과 옆집 주민은 관계가 좋지 않다. 감정이 상한 상태인데, 이는 이후 마트에 갇히게 되고, 괴물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불신을 강화시키는 소재가 된다. 이 때 몇몇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상대방의 과거의 과오를 곱씹거나 혹은 굴욕을 당했던 기억을 되살려 상황에 곧이 직면하지 못한다.
3.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늘어난다.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4. 극 중 교사로 나오는 여인은 과연 교사답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다함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끌고간다. 말그래도 끌고가는 수준... 이후 교사는 현실을 직시하고 희망을 버린다. 제일 입체적으로 변하는 인물이지만, 이후 주인공의 행보가 이상해지면서.. 인물간의 역할이 모호하게 되어버렸다.
5. 집단 광기의 중심에 서 있는 광신도 여자는 영화 내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함과 짜증을 유발시키며 흥미를 이끌어나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광기에 물들어 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주인공 일행은 마트 밖의 적보다 마트 안의 적들에게 훨씬 위협을 느낀다.
6. 인간의 적은 결국 인간. 그리고 암울한 상황에서의 광기. 이 두 주제가 영화가 말하는 주된 포인트.
7. 조금 의아했던 것이, 주인공은 그 역경을 해치며 영울 행세를 하다가 왜 막판에 가서는 그런 행동을 택했는지... 아내의 죽음을 본 탓일까. 그렇다고 해도 결말은 조금 뜬금없었다. 이 부분에서는 소설판이 좀 더 납득할만한 결말인듯.
8. 그러나 영화는 극적인 결말을 통하여 영웅주의의 허무함을 단박에 깨우쳐준다. 아무래도 이 때문에 주인공의 행보가 모호해진듯. 본래 이런 재난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주인공이 사람들을 이끌고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헤쳐 나오는, 그리고 주인공이 매우 뛰어난 리더십과 능력을 보이는 것이 보통. 그러나 미스트의 결말은 이런 영웅주의 특히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1. 영화 초입부분, 주인공이 그림을 완성시켜가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마치 어느 영웅의 찬란한 뒷모습을 연상시킨다. 초반부터 이 영화가 말해주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그림.
2. 주인공과 옆집 주민은 관계가 좋지 않다. 감정이 상한 상태인데, 이는 이후 마트에 갇히게 되고, 괴물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불신을 강화시키는 소재가 된다. 이 때 몇몇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상대방의 과거의 과오를 곱씹거나 혹은 굴욕을 당했던 기억을 되살려 상황에 곧이 직면하지 못한다.
3.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늘어난다.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4. 극 중 교사로 나오는 여인은 과연 교사답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다함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끌고간다. 말그래도 끌고가는 수준... 이후 교사는 현실을 직시하고 희망을 버린다. 제일 입체적으로 변하는 인물이지만, 이후 주인공의 행보가 이상해지면서.. 인물간의 역할이 모호하게 되어버렸다.
5. 집단 광기의 중심에 서 있는 광신도 여자는 영화 내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함과 짜증을 유발시키며 흥미를 이끌어나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광기에 물들어 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주인공 일행은 마트 밖의 적보다 마트 안의 적들에게 훨씬 위협을 느낀다.
6. 인간의 적은 결국 인간. 그리고 암울한 상황에서의 광기. 이 두 주제가 영화가 말하는 주된 포인트.
7. 조금 의아했던 것이, 주인공은 그 역경을 해치며 영울 행세를 하다가 왜 막판에 가서는 그런 행동을 택했는지... 아내의 죽음을 본 탓일까. 그렇다고 해도 결말은 조금 뜬금없었다. 이 부분에서는 소설판이 좀 더 납득할만한 결말인듯.
8. 그러나 영화는 극적인 결말을 통하여 영웅주의의 허무함을 단박에 깨우쳐준다. 아무래도 이 때문에 주인공의 행보가 모호해진듯. 본래 이런 재난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주인공이 사람들을 이끌고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헤쳐 나오는, 그리고 주인공이 매우 뛰어난 리더십과 능력을 보이는 것이 보통. 그러나 미스트의 결말은 이런 영웅주의 특히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2014년 8월 7일 목요일
한동안 뜸했었지 - <그녀에게>
4월부터 블로그 관리가 귀찮아지기 시작하더니 5월에는 아예 그냥 손을 놔버리고야 말았다. 이후 가끔 생각이 나고는 했지만 귀찮기도 하고, 흥미를 느끼지도 못하여 방치하고 있던 것을 오늘 다시 끄집어내고자 한다. 한동안 정말 뜸했다.
<그녀에게> 역시 내가 한동안 관심을 끄고 있던 영화였다. 몇년전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다가 접하게 된 영화. 당시에는 어렴풋이 이해를 하고 넘어갔던 영화의 감성을 이제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영화의 감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알모도바르의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차분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누군가가 그저 흘깃 스쳐본 영화의 겉표면은 잔혹한 사랑 영화로 보여질 수 있겠으나, <그녀에게>는 사실 엉뚱한 넌센스 영화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둔 남자가 게이로 오해받으며, 그 남자의 지극한 간호로 깨어난 여자는 남자를 다시 만날 수가 없다. 넌센스의 중심에 선 인물은 남자 간호사 베니그노이다. 알리시아가 발레리나로써 할동했을 때 부터 그는 그녀를 짝사랑한다. 매일 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을 훔쳐보며 사모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녀의 집을 알아내어 머리핀을 훔쳐가기도 한다. 영락없는 스토커의 모습이자,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알모도바르는 이를 베니그노의 감성에 덧대어 조금더 이질적인 느낌으로 만들어 낸다. 때문에 베니그노의 분명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분노가 아닌 이질적이고 기묘하게 생각되고는 한다.
환자와 간호사로 만난 후의 행동은 이제 베니그노의 탁월함을 과시한다. 베니그노는 의식불명의 알리시아에게 매일 말을 걸면서 그녀가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 스스로도 그것이 기적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본인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 놓지 않는다. 마르코는 베니그노의 행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얼마 안가 그의 생각에 일부 동조하게 된다. 허나 마르코가 혼수상태의 연인, 리디아에게 말을 거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후 나오는 리디아의 전 연인과는 대조되는 부분인데, 전 남자친구는 리디아의 손을 잡으며 의식이 없는 그녀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도 자신이 발목을 다쳐 2주동안 리디아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사실 마르코는 베니그노만큼 기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베니그노는 그렇게 사랑하는 알리시아를 강간하기에 이르는데, 이는 분명 사회적으로 볼 때 크게 규탄받을 행위이다. 하지만 알모도바르는 이를 넌센스하게 풀어 나가는데, 바로 알리시아가 베니그노의 보살핌으로 마침내 깨어난 것이다. 감옥에 들어간 베니그노에게는 이러한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으며, 결국 베니그노는 알리시아가 없는 세상에서 자살을 택하고 만다. 넌센스에 이은 넌센스가 빛나는 장면이다. 이로 인해 베니그노에 대한 규탄적 시선보다는 한 남성의 짙은 로망이 만들어낸 잔혹한 결말로 보여지게 된다.
<그녀에게> 역시 내가 한동안 관심을 끄고 있던 영화였다. 몇년전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다가 접하게 된 영화. 당시에는 어렴풋이 이해를 하고 넘어갔던 영화의 감성을 이제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영화의 감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알모도바르의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차분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누군가가 그저 흘깃 스쳐본 영화의 겉표면은 잔혹한 사랑 영화로 보여질 수 있겠으나, <그녀에게>는 사실 엉뚱한 넌센스 영화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둔 남자가 게이로 오해받으며, 그 남자의 지극한 간호로 깨어난 여자는 남자를 다시 만날 수가 없다. 넌센스의 중심에 선 인물은 남자 간호사 베니그노이다. 알리시아가 발레리나로써 할동했을 때 부터 그는 그녀를 짝사랑한다. 매일 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을 훔쳐보며 사모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녀의 집을 알아내어 머리핀을 훔쳐가기도 한다. 영락없는 스토커의 모습이자,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알모도바르는 이를 베니그노의 감성에 덧대어 조금더 이질적인 느낌으로 만들어 낸다. 때문에 베니그노의 분명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분노가 아닌 이질적이고 기묘하게 생각되고는 한다.
환자와 간호사로 만난 후의 행동은 이제 베니그노의 탁월함을 과시한다. 베니그노는 의식불명의 알리시아에게 매일 말을 걸면서 그녀가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 스스로도 그것이 기적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본인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 놓지 않는다. 마르코는 베니그노의 행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얼마 안가 그의 생각에 일부 동조하게 된다. 허나 마르코가 혼수상태의 연인, 리디아에게 말을 거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후 나오는 리디아의 전 연인과는 대조되는 부분인데, 전 남자친구는 리디아의 손을 잡으며 의식이 없는 그녀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도 자신이 발목을 다쳐 2주동안 리디아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사실 마르코는 베니그노만큼 기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베니그노는 그렇게 사랑하는 알리시아를 강간하기에 이르는데, 이는 분명 사회적으로 볼 때 크게 규탄받을 행위이다. 하지만 알모도바르는 이를 넌센스하게 풀어 나가는데, 바로 알리시아가 베니그노의 보살핌으로 마침내 깨어난 것이다. 감옥에 들어간 베니그노에게는 이러한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으며, 결국 베니그노는 알리시아가 없는 세상에서 자살을 택하고 만다. 넌센스에 이은 넌센스가 빛나는 장면이다. 이로 인해 베니그노에 대한 규탄적 시선보다는 한 남성의 짙은 로망이 만들어낸 잔혹한 결말로 보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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