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31일 토요일
나의 독서에 대한 소고.
포풍 블로그짓을 오늘은 이 글로 끝내려고 한다. 요즘 독서가 고민이다. 책을 읽으려고 손에 잡으면 일단 읽히기는 하는데 그게 오래가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책을 손에 잡는 빈도도 적어졌다. 전에 죄와 벌을 읽을 때에는 한 달 가까이 걸렸다. 한 달. 학기중이니 읽을 시간이 없었을거라고 생각하더라도 지금은 방학인데, 영 많이 읽지를 못한다. 그래서 요즘 책 읽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가. 책이 나를 좀먹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책을 향한 집착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 느낌, 생각이다. 그래서 그냥 놓기로 했다. 내가 싫다는데 뭐...
심판의 밤 - 1부
"...믿지...."
1942년 세계가 제 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서 살고 있는 때에, 한 여객선이 희뿌연 안개를 헤치며 바다의 한 가운데로 나아가고 있다. 수면 가까이 자욱하게 깔린 안개 덕분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여객선은 나침반과 노련한 항해사의 기술에 의존하여 점차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않아..."
안개 사이로 여객선의 갑판이 보이고, 그 위에는 한 남자가 난간에 기대어 선 채 "믿지 않는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람은 하나 불지 않는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에 깔린 습기로 인해 날이 추웠던지라, 남자는 목을 입고있는 긴 트렌치 코트 안으로 들이밀어놓고는 팔짱을 힘껏 쥐고 있었다. 그는 웅크린 자세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눈은 초점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동공은 풀려 있는 것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남자는 몇 초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더니 금세 잠에서 깨어난듯 몸을 푸드덕거렸다. 여기가 어디지?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주변에는 온통 안개가 맺어놓은 물방울 맺힌 난간과 선장실 벽 뿐이었다. 남자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리둥절해 한다. 이윽고 자신의 상황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어디에서 왔었지? 이름은? 온갖 의문점이 남자의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남자의 질문이 점점 깊숙히 빠져들 무렵, 갑자기 누군가가 남자의 앞에 나타나 그와 눈을 마주쳤다. 머리를 옆으로 넘겼으며 수염은 깔끔하게 잘라낸 모습의 신사였다. 아니, 자세히 보니 흰 셔츠에 검은 자켓을 걸쳤는데, 자켓의 모양이 으레 레스토랑의 웨이터들이 입는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이 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선원일 것이다.
"랜서 씨?"
"예?"
선원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선원의 물음에 즉각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이유를 찾던 남성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가, 곧 안정을 찾았다. 그래, 나는 랜서구나. 랜서였다. 랜서는 여러가지 의문 중에서 적어도 자신의 이름만은 해결했다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랜서는 끼던 팔짱을 풀고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주머니 속의 온기가 그의 두 손을 감쌌다.
"식사 시간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선원은 랜서를 배 안으로 안내했다. 랜서도 두 말 않고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좁다란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을 내려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큰 식당의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식당에는 이제 막 도착한 랜서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고 있는 다른 승객들과 이제 막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 하는 승객들이 있었다. 테이블들은 흰색 보로 덮여있었고, 그 위에는 와인잔과 그릇들이 엎어진 채로 놓여져 있었다. 승객들은 꼭 몇 명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하는 투로 봐서는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배에 혼자 탑승한 것은 랜서뿐인 듯했다. 아니 근데, 정말 내가 이 배에 혼자 탑승한게 맞을까? 랜서는 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겨들 뻔 했으나, 한 여자아이가 떨어뜨린 인형을 주워주느라 곧 그 의문을 잊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자."
인형을 받은 아이와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랜서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식당 문을 나갔다. 랜서는 이 모든 모습이 낯설었고 희한할 뿐이었다. 전혀 익숙치 않은 풍경이었다. 그저 조용히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벗어 선원에게 건넬 뿐이었다.
"랜서 씨 인가요?"
방황하는 랜서의 뒤로 살집이 있는 중년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턱이 두 개일 정도로 살이 붙어있었으며 덩치도 컸다. 머리는 전부 뒤로 넘겨서 이마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자신의 몸에 맞게 입은 옷일지는 모르겠으나, 흰 셔츠에 노란 니트를 입었고, 붉은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었으며 세로로 줄무늬가 그려져있는 자켓을 입고 있었다. 잘 입은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돈이 꽤나 있어보이는 사람이었다.
"예... 그런데요...?"
"전 포터라고 합니다. 여기에 앉으시죠!"
어리둥절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랜서에게 포터는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랜서는 포터가 있는 테이블로 가서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저 포터라는 사람은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 것일까? 랜서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낯설 뿐이었으나 포터는 곧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랜서에게 소개시켜주기 시작했다.
"끝에 앉아 계신 남성 분은 '스탠리' 씨 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여성 분은 스탠리 씨의 비서인 마틸다 씨죠."
포터의 소개가 끝나자 스탠리와 마틸다가 랜서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지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아니면 미국으로 떠나시는 길인가요?"
"미국으로... 떠나는 길일겁니다... 아마도..."
랜서는 마틸다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며 겨우 대답했다. 그도 그럴것이, 정작 자신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억의 단편이 아예 사라진 느낌이었다. 갑판에서 정신을 차리기 이전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랜서는 바로 그것에서부터 위화감을 계속 느끼고 있던 터였다. 결국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화에서 랜서는 소극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의아한 대화가 오고 갔고, 랜서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랜서는 그 모든 의문에 짜증이 났다. 전부 집어치우고 싶었다. 점차로 찌푸려지는 미간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 순간 배의 선장이 랜서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왔다. 선장은 키가 큰 편이었고, 호리호리한 몸에 제복을 딱 맞게 차려입고 있었다. 나이가 좀 들어보였는데, 선장의 흰 턱수염이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빠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해 유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밖에 안개가 가득 깔려 있어서 항해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이 연안에는 독일군의 유보트가 매복해 있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죠."
배가 지나가는 곳은 독일군의 유보트 출몰 지역이었다.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독일군은 오직 적과 아군만을 생각했을 뿐, 민간인이라는 제 3자를 염두해 두지 않았다. 때문에, 독일군은 유보트를 이용하여 민간 여객선을 공격하기도 했던 것이다. 무거운 이야기가 입밖으로 나오자 승객들은 입을 다물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 포터가 침묵을 깨고 이야기했다.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뒤로 합시다. 여기 랜서 씨도 오셨으니까요."
포터는 선장을 돌려 보낸 후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시 띄워놓기 위해 모두를 바라 본 후, 제안을 했다.
"우리 각자의 출신지를 이야기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전 맥시코에서 왔습니다. 랜서 씨, 랜서 씨는 어디에서 오셨죠?"
질문을 받은 랜서는 당황했다. 출신지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다. 갑판 이전의 일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출신지가 기억날리가 만무했다.
"전... 프... 프랑...."
랜서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답을 끄집어냈다. 본인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으나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프랑스요?" 포터가 다시 물었다.
"아니요... 그게 기억이....아, 프랑.... 프랑크푸르트일겁니다."
"그렇다면 독일 출신이신가요?"
"예... 그렇죠..."
랜서는 겨우 자신의 출신지를 생각해내었다. 프랑크푸르트. 어쩐지 더욱 아련한 느낌이었다.
"그럼 독일은 언제 떠나셨다요?" 마틸다가 물었다.
"아 그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무 것도...."
그러나 랜서는 고향만이 기억날 뿐, 그 외에는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기껏 이름과 고향을 기억해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던 아까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지만, 랜서는 계속해서 사람들과 대화할 자신이 없어졌다. 말을 섞을수록, 질문에 대답할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질 뿐이었고, 자기 존재에 대해 의심이 커져갔다. 결국 랜서는 자리를 떴다. 식당 문을 열고 나와 철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던 도중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식당 문을 뒤돌아본다음 다시 계단을 마저 내려가 숨을 내뱉었다. 그는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안개 이슬이 조그맣게 맺힌 차가운 철제 벽에 등을 댄 채, 랜서는 가만히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고작 기억난 것이라고는 이름과 고향 뿐이었다. 랜서는 이런 상황에 짜증이나 화가 나기 보다는 점점 간절해졌다. 과연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 존재하는 것인가? 대답에 대한 답을 누군가 알려준다면 갑판을 내달리며 기쁨의 포효라도 내지를 기분이었다. 랜서가 몇 분 쯤 가만히 바다를 내다보며 자신의 기분을 곱씹고 있을 때에, 철계단에서 날카롭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계단을 다라 내려오고 있었다. 랜서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마틸다가 있었다. 마틸다는 곧장 계단을 내려와 랜서의 앞을 지나 배의 복도를 지나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랜서는 마틸다를 보더니 다시 의문에 차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마틸다 씨... 혹시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랜서가 마틸다를 보았을 때, 의문에 가득찬 그것은 바로 낯설지 않은 느낌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이전에 본 것 같은 느낌. 그것이 그의 머릿속을 다시 엉망친창으로 만드려 하고 있었다. 마틸다는 이상하다는 듯, 랜서의 눈을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아뇨. 처음 보는걸요?"
"저기... 무례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전 당신이 굉장히... 친숙해요. 익숙하고..."
"음, 그건 다행이네요."
"아니요, 그게... 다정한 느낌이 아니라, 오랫동안 바라본 느낌이란 말입니다."
랜서는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며 힘든 대화를 이어나갔다. 힘든 것은 마틸다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아가부터 랜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호감을 표시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 중 하나인 줄 알았으나, 랜서의 얼빠진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마틸다는 눈을 약간 찡그랜 채 랜서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 배에 타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눈을 떠보니 제가 배 위에 서 있었어요. 제가 언제 어디서 배를 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전... 맘소사...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랜서는 허공에 눈을 맞춘재 손을 입술에 대고 말을 이었다.
"제 이름과 고향은 기억나는데 그 외의 것들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집은 어딘지, 가족들은 누군지, 직업은 뭔지..."
대답을 들은 마틸다는 랜서의 상태가 확실히 이상하다고 여겼다. 이제 그녀는 랜서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드려고 할 지경이었다.
"세상에... 잠시 쉬는 게 좋겠어요. 방으로 돌아가셔셔 한 숨 주무시는게..."
"... 잠깐만요."
마틸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랜서는 갑자기 머리에 번뜩하고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랜서는 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마틸다에게 말했다.
"유보트... 그게 기억이 나요. 우리 배는 유보트의 공격을 받을 거예요!"
이렇게 말을 하는 랜서의 어조는 확고했다. 그는 눈을 부릅떴으나 동공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마틸다는 이제 인상을 확실히 찡그리고 답했다.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마세요. 모두가 그걸 주의하고 있어요."
"아니요, 확실해요. 왜인지 그게 기억이 납니다."
이름과 고향 밖에 기억이 나질 않더니, 이젠 유보트라니! 랜서는 자신의 기억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지만 유보트의 공격을 받을 것이란 사실에는 확신이 들었다. 왜 유보트가 떠올랐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랜서의 머릿 속에는 배가 유보트의 공격을 받고 좌초하는 그림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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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 <The Twilight Zone>, 한국명칭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 번 글로 옮겨보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애먹는 중...
"...않아..."
안개 사이로 여객선의 갑판이 보이고, 그 위에는 한 남자가 난간에 기대어 선 채 "믿지 않는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람은 하나 불지 않는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에 깔린 습기로 인해 날이 추웠던지라, 남자는 목을 입고있는 긴 트렌치 코트 안으로 들이밀어놓고는 팔짱을 힘껏 쥐고 있었다. 그는 웅크린 자세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눈은 초점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동공은 풀려 있는 것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남자는 몇 초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더니 금세 잠에서 깨어난듯 몸을 푸드덕거렸다. 여기가 어디지?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주변에는 온통 안개가 맺어놓은 물방울 맺힌 난간과 선장실 벽 뿐이었다. 남자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리둥절해 한다. 이윽고 자신의 상황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어디에서 왔었지? 이름은? 온갖 의문점이 남자의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남자의 질문이 점점 깊숙히 빠져들 무렵, 갑자기 누군가가 남자의 앞에 나타나 그와 눈을 마주쳤다. 머리를 옆으로 넘겼으며 수염은 깔끔하게 잘라낸 모습의 신사였다. 아니, 자세히 보니 흰 셔츠에 검은 자켓을 걸쳤는데, 자켓의 모양이 으레 레스토랑의 웨이터들이 입는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이 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선원일 것이다.
"랜서 씨?"
"예?"
선원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선원의 물음에 즉각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이유를 찾던 남성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가, 곧 안정을 찾았다. 그래, 나는 랜서구나. 랜서였다. 랜서는 여러가지 의문 중에서 적어도 자신의 이름만은 해결했다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랜서는 끼던 팔짱을 풀고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주머니 속의 온기가 그의 두 손을 감쌌다.
"식사 시간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선원은 랜서를 배 안으로 안내했다. 랜서도 두 말 않고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좁다란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을 내려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큰 식당의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식당에는 이제 막 도착한 랜서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고 있는 다른 승객들과 이제 막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 하는 승객들이 있었다. 테이블들은 흰색 보로 덮여있었고, 그 위에는 와인잔과 그릇들이 엎어진 채로 놓여져 있었다. 승객들은 꼭 몇 명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하는 투로 봐서는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배에 혼자 탑승한 것은 랜서뿐인 듯했다. 아니 근데, 정말 내가 이 배에 혼자 탑승한게 맞을까? 랜서는 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겨들 뻔 했으나, 한 여자아이가 떨어뜨린 인형을 주워주느라 곧 그 의문을 잊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자."
인형을 받은 아이와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랜서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식당 문을 나갔다. 랜서는 이 모든 모습이 낯설었고 희한할 뿐이었다. 전혀 익숙치 않은 풍경이었다. 그저 조용히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벗어 선원에게 건넬 뿐이었다.
"랜서 씨 인가요?"
방황하는 랜서의 뒤로 살집이 있는 중년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턱이 두 개일 정도로 살이 붙어있었으며 덩치도 컸다. 머리는 전부 뒤로 넘겨서 이마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자신의 몸에 맞게 입은 옷일지는 모르겠으나, 흰 셔츠에 노란 니트를 입었고, 붉은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었으며 세로로 줄무늬가 그려져있는 자켓을 입고 있었다. 잘 입은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돈이 꽤나 있어보이는 사람이었다.
"예... 그런데요...?"
"전 포터라고 합니다. 여기에 앉으시죠!"
어리둥절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랜서에게 포터는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랜서는 포터가 있는 테이블로 가서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저 포터라는 사람은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 것일까? 랜서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낯설 뿐이었으나 포터는 곧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랜서에게 소개시켜주기 시작했다.
"끝에 앉아 계신 남성 분은 '스탠리' 씨 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여성 분은 스탠리 씨의 비서인 마틸다 씨죠."
포터의 소개가 끝나자 스탠리와 마틸다가 랜서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지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아니면 미국으로 떠나시는 길인가요?"
"미국으로... 떠나는 길일겁니다... 아마도..."
랜서는 마틸다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며 겨우 대답했다. 그도 그럴것이, 정작 자신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억의 단편이 아예 사라진 느낌이었다. 갑판에서 정신을 차리기 이전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랜서는 바로 그것에서부터 위화감을 계속 느끼고 있던 터였다. 결국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화에서 랜서는 소극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의아한 대화가 오고 갔고, 랜서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랜서는 그 모든 의문에 짜증이 났다. 전부 집어치우고 싶었다. 점차로 찌푸려지는 미간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 순간 배의 선장이 랜서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왔다. 선장은 키가 큰 편이었고, 호리호리한 몸에 제복을 딱 맞게 차려입고 있었다. 나이가 좀 들어보였는데, 선장의 흰 턱수염이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빠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해 유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밖에 안개가 가득 깔려 있어서 항해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이 연안에는 독일군의 유보트가 매복해 있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죠."
배가 지나가는 곳은 독일군의 유보트 출몰 지역이었다.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독일군은 오직 적과 아군만을 생각했을 뿐, 민간인이라는 제 3자를 염두해 두지 않았다. 때문에, 독일군은 유보트를 이용하여 민간 여객선을 공격하기도 했던 것이다. 무거운 이야기가 입밖으로 나오자 승객들은 입을 다물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 포터가 침묵을 깨고 이야기했다.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뒤로 합시다. 여기 랜서 씨도 오셨으니까요."
포터는 선장을 돌려 보낸 후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시 띄워놓기 위해 모두를 바라 본 후, 제안을 했다.
"우리 각자의 출신지를 이야기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전 맥시코에서 왔습니다. 랜서 씨, 랜서 씨는 어디에서 오셨죠?"
질문을 받은 랜서는 당황했다. 출신지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다. 갑판 이전의 일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출신지가 기억날리가 만무했다.
"전... 프... 프랑...."
랜서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답을 끄집어냈다. 본인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으나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프랑스요?" 포터가 다시 물었다.
"아니요... 그게 기억이....아, 프랑.... 프랑크푸르트일겁니다."
"그렇다면 독일 출신이신가요?"
"예... 그렇죠..."
랜서는 겨우 자신의 출신지를 생각해내었다. 프랑크푸르트. 어쩐지 더욱 아련한 느낌이었다.
"그럼 독일은 언제 떠나셨다요?" 마틸다가 물었다.
"아 그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무 것도...."
그러나 랜서는 고향만이 기억날 뿐, 그 외에는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기껏 이름과 고향을 기억해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던 아까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지만, 랜서는 계속해서 사람들과 대화할 자신이 없어졌다. 말을 섞을수록, 질문에 대답할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질 뿐이었고, 자기 존재에 대해 의심이 커져갔다. 결국 랜서는 자리를 떴다. 식당 문을 열고 나와 철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던 도중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식당 문을 뒤돌아본다음 다시 계단을 마저 내려가 숨을 내뱉었다. 그는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안개 이슬이 조그맣게 맺힌 차가운 철제 벽에 등을 댄 채, 랜서는 가만히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고작 기억난 것이라고는 이름과 고향 뿐이었다. 랜서는 이런 상황에 짜증이나 화가 나기 보다는 점점 간절해졌다. 과연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 존재하는 것인가? 대답에 대한 답을 누군가 알려준다면 갑판을 내달리며 기쁨의 포효라도 내지를 기분이었다. 랜서가 몇 분 쯤 가만히 바다를 내다보며 자신의 기분을 곱씹고 있을 때에, 철계단에서 날카롭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계단을 다라 내려오고 있었다. 랜서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마틸다가 있었다. 마틸다는 곧장 계단을 내려와 랜서의 앞을 지나 배의 복도를 지나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랜서는 마틸다를 보더니 다시 의문에 차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마틸다 씨... 혹시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랜서가 마틸다를 보았을 때, 의문에 가득찬 그것은 바로 낯설지 않은 느낌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이전에 본 것 같은 느낌. 그것이 그의 머릿속을 다시 엉망친창으로 만드려 하고 있었다. 마틸다는 이상하다는 듯, 랜서의 눈을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아뇨. 처음 보는걸요?"
"저기... 무례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전 당신이 굉장히... 친숙해요. 익숙하고..."
"음, 그건 다행이네요."
"아니요, 그게... 다정한 느낌이 아니라, 오랫동안 바라본 느낌이란 말입니다."
랜서는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며 힘든 대화를 이어나갔다. 힘든 것은 마틸다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아가부터 랜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호감을 표시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 중 하나인 줄 알았으나, 랜서의 얼빠진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마틸다는 눈을 약간 찡그랜 채 랜서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 배에 타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눈을 떠보니 제가 배 위에 서 있었어요. 제가 언제 어디서 배를 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전... 맘소사...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랜서는 허공에 눈을 맞춘재 손을 입술에 대고 말을 이었다.
"제 이름과 고향은 기억나는데 그 외의 것들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집은 어딘지, 가족들은 누군지, 직업은 뭔지..."
대답을 들은 마틸다는 랜서의 상태가 확실히 이상하다고 여겼다. 이제 그녀는 랜서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드려고 할 지경이었다.
"세상에... 잠시 쉬는 게 좋겠어요. 방으로 돌아가셔셔 한 숨 주무시는게..."
"... 잠깐만요."
마틸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랜서는 갑자기 머리에 번뜩하고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랜서는 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마틸다에게 말했다.
"유보트... 그게 기억이 나요. 우리 배는 유보트의 공격을 받을 거예요!"
이렇게 말을 하는 랜서의 어조는 확고했다. 그는 눈을 부릅떴으나 동공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마틸다는 이제 인상을 확실히 찡그리고 답했다.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마세요. 모두가 그걸 주의하고 있어요."
"아니요, 확실해요. 왜인지 그게 기억이 납니다."
이름과 고향 밖에 기억이 나질 않더니, 이젠 유보트라니! 랜서는 자신의 기억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지만 유보트의 공격을 받을 것이란 사실에는 확신이 들었다. 왜 유보트가 떠올랐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랜서의 머릿 속에는 배가 유보트의 공격을 받고 좌초하는 그림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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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 <The Twilight Zone>, 한국명칭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 번 글로 옮겨보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애먹는 중...
내가 예전에는 무슨 글을 쓰고 살았었더라?
기억이 안난다 정말. 무슨 글을 썼었는지, 어떻게 썼었는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으니 정말 쓸 글이 없다.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사색에 잠긴 것도 아닌... 하루. 음악은 계속 듣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그런데 정말 예전에는 무슨 정신으로 글을 썼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감을 잃어버린 것일까. 과거의 나를 복습해야 하는 것일까. 2014년으로 되돌아가서 나의 역사를 곱씹어보며 감을 되찾아야 하는가보다. 이와중에 벌써 2월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말 예전에는 무슨 정신으로 글을 썼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감을 잃어버린 것일까. 과거의 나를 복습해야 하는 것일까. 2014년으로 되돌아가서 나의 역사를 곱씹어보며 감을 되찾아야 하는가보다. 이와중에 벌써 2월이 시작되었다.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2015년 1월 23일 금요일
감상문
‘액자’라고 하는 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다. 작게는 예술
작품, 특히 미술 작품을 걸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액자가 있고 크게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테두리를
형성하는 거대한 액자가 있다. 이 액자에 걸린 작품은 그 시대의 사상이나 관념 등을 반영하며,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유희를 뽐낸다. 액자는 이를 외부와 분리시켜
작품이 순수하게 그 자체로써 존재하도록 규정짓는다. 또한 작품으로 하여금 ‘예술’로 규정을 짓기도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액자 안에 있는 것은 자연스레 예술로 인식을 하면서, 액자 밖에 존재하는 것에 대하여는 그렇게
하지 않거나 혹은 관심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액자의 역할이다.
액자에 담긴 미술작품은 각각 존재하는 개별자인 동시에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동일체이다. 액자에 담김으로써 그 밖의 다른 세계와는 ‘분리’되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조자마저도 미술작품과 하나가 될 수 없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액자는 그림과 관조자의 직접적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데, 관조자를 포함한 외부 세계는 차단시키지만, 동시에 이로 인해 관조자의 정신은 그의 삶이나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이다. 또한 액자의 테두리는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그림에 있어서 강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모순이다. 예술에 관여하는 것은 이러한 액자뿐만 아니라 여러 요소들-‘자극’이 되는 것들이 존재한다. 조각상에 덮인 천이나, 콘서트의 서치라이트 혹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 더 좋아 보인다는 주관적 감상마저도 이 자극에 들어간다. 칸트는 이 자극에 대하여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면서, 자극에 의해 미가 증대된다는 것은 오류이며 자극은 되려 순수한 취미판단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칸트는 자극을 이물질이라는 성가신 존재 그리고 없어야 좋은 존재에 비유했다. 반면 자크 데리다는 자극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자극은 작품의 가장자리로써 작품에 내재하는 것이며 때문에 작품의 구성요소로 보았다.
우리 주변의 테두리를 인식하는 것은 낯설고 이색적인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는 우리도 모르게 그저 멋대로, 마음에 드는 대로 선택하는 것들이 수두룩하고 이러한
선택은 매 순간마다 찾아온다. 하물며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어떤가? 나는
예술작품의 작은 테두리, 나아가서는 시대문화적인 큰 테두리를 인식하는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감상하는 것은 거의 그림 그 자체들이다. 누구도
액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미술관은 어떤지 말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점묘법을 사용하여 안개 낀 밤 풍경을 묘사한’작품이라는 설명은 들었어도 ‘날카롭게 조각된 나무모양의’액자라는 설명은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액자가 바로 작품을 순수하게 가두어놓는 역할을 하는 존재라니, 나의
생각보다 그것은 미술작품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지켜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세상과 단절시키는 그것은 비단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는 한다. 가령
우리가 매 순간마다 선택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의 시대관념적 그리고 자신의 주관적인 테두리가 들어간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우리는 늘 머릿속에 각자의 고유한 액자를 들고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마땅한 작품이 보이면 그 액자 안에 가두어
놓고 평가하며 만족해한다. 이는 예술과 인간의 삶에 있어서 큰 연결고리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의 예술작품들은 그러한 테두리를 벗어나 작품 외적인 요소들과 작품이 결합하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는데, 이는 그만큼 현대인들이 보다 자유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어차피 액자는 강제적이고 모순적인 것이므로, 작품이 언제까지나 그
액자 안에 갇혀있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자연적이지 못한 일이기에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칸트가 보기에 강제적이고 모순적인 것은 액자뿐만이 아니라 작품에 가해지는 자극 또한 포함되는데, 데리다는 자극 또한 작품의 한 요소로써 보고 있다. 이는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나뉘는데, 현대의 예술 작품들은 작품과 자극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자극이 작품이 되거나 작품을 넘어서 주가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칸트가 본다면 큰 한숨을 내쉴지도 모를 일이지만 필자는 애초에 작품과 자극을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과 외적인 것은 액자로 구별된다. 그렇다면 작품과 작품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으로 구별되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의 대결 이야기를 떠올려 볼 때(물론 그리스 회화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어 각색한 이야기일 테지만), 제욱시스는 작품을 방해하는 천, 즉 자극을 치우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그것은 바로 작품에 속한 요소였다. 파라시우스는 자극을 작품의 요소로 생각하여 그림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칸트는 계속해서 커튼을 걷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이미 작품의 요소로써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자극을 작품에서 배제시킬 수 없다. 칸트는 작품의 요소와 작가의 의도 모두를 거부하고 있기에 유동적이지 못한 입장으로 보인다. 액자에 관한 흥미로운 강의를 들었으니, 나중에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면 그때는 액자 모양과 더불어 작품을 감싸고 있는 각종 조명들이나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봐야겠다. 그것이 정말로 작품과 나의 자연성을 이어줄 지 궁금하다. 이제 좀 더 재미있는 관람시간이 되지 않을까.
액자에 담긴 미술작품은 각각 존재하는 개별자인 동시에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동일체이다. 액자에 담김으로써 그 밖의 다른 세계와는 ‘분리’되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조자마저도 미술작품과 하나가 될 수 없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액자는 그림과 관조자의 직접적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데, 관조자를 포함한 외부 세계는 차단시키지만, 동시에 이로 인해 관조자의 정신은 그의 삶이나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이다. 또한 액자의 테두리는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그림에 있어서 강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모순이다. 예술에 관여하는 것은 이러한 액자뿐만 아니라 여러 요소들-‘자극’이 되는 것들이 존재한다. 조각상에 덮인 천이나, 콘서트의 서치라이트 혹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 더 좋아 보인다는 주관적 감상마저도 이 자극에 들어간다. 칸트는 이 자극에 대하여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면서, 자극에 의해 미가 증대된다는 것은 오류이며 자극은 되려 순수한 취미판단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칸트는 자극을 이물질이라는 성가신 존재 그리고 없어야 좋은 존재에 비유했다. 반면 자크 데리다는 자극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자극은 작품의 가장자리로써 작품에 내재하는 것이며 때문에 작품의 구성요소로 보았다.
칸트가 보기에 강제적이고 모순적인 것은 액자뿐만이 아니라 작품에 가해지는 자극 또한 포함되는데, 데리다는 자극 또한 작품의 한 요소로써 보고 있다. 이는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나뉘는데, 현대의 예술 작품들은 작품과 자극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자극이 작품이 되거나 작품을 넘어서 주가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칸트가 본다면 큰 한숨을 내쉴지도 모를 일이지만 필자는 애초에 작품과 자극을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과 외적인 것은 액자로 구별된다. 그렇다면 작품과 작품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으로 구별되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의 대결 이야기를 떠올려 볼 때(물론 그리스 회화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어 각색한 이야기일 테지만), 제욱시스는 작품을 방해하는 천, 즉 자극을 치우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그것은 바로 작품에 속한 요소였다. 파라시우스는 자극을 작품의 요소로 생각하여 그림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칸트는 계속해서 커튼을 걷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이미 작품의 요소로써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자극을 작품에서 배제시킬 수 없다. 칸트는 작품의 요소와 작가의 의도 모두를 거부하고 있기에 유동적이지 못한 입장으로 보인다. 액자에 관한 흥미로운 강의를 들었으니, 나중에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면 그때는 액자 모양과 더불어 작품을 감싸고 있는 각종 조명들이나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봐야겠다. 그것이 정말로 작품과 나의 자연성을 이어줄 지 궁금하다. 이제 좀 더 재미있는 관람시간이 되지 않을까.
2015년 1월 19일 월요일
월간소녀 노자키군
남들이 그렇게 재밌다길래 혹해서 본 작품인데 재밌당.
애니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건데 자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봐서 다행스런 마음도 든다. 무엇보다 본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히로인의 다양한 표정... 히로인이 사는 것도 왜인지 힘든 만화.
긴 글을 작성중인데
평일에는 알바를 끝내고 집에 오다보니 글을 쓰기가 영 귀찮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해야 될 것들을 블로그에 메모장처럼 적어놓으려고 했는데 영 귀찮아진다. 아... 이러다가 블로그도 다시 잠정 폐쇄할까봐 걱정이다. 아니 사실 걱정은 안하는데 그렇게되면 내 자신이 너무 게을러보일까봐 이와중에도 열심히 주저리를 늘어놓고 있다.
얼마전에 군 입대 날짜가 확정되었다. 오늘 알바를 갔더니 같이 일하는 전역자들이 나를 보고 군대 안갔냐고 물어봤다. 그냥 넌시시 '너는 언제가요?'라고 묻는 뉘앙스가 아니라 '너 같은 액면가가 아직 군대를 안갔단 말이야?'하는 투였다. 네, 아직 안갔는데요... 여름에 갑니다. 가서 낫들고 잡초나 열심히 베고 뽑을 작정이다.
아무튼 군 입내 날짜가 확정되었으니 그동안 뭐라도 해보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영 쉽지가 않다. 남들은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면서 책도 펴내고는 하지만 실상 그 책을 보면 이 사람이 여행에 쏟아부은 돈이 대학생에겐 만만치가 않다. 물론 알바를 매우 빡세게 몇 달 동안 한다면 벌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이미 몇 달 동안 빡세게 알바를 하기엔 군 날짜가 애매하다. 그래도 다음달이면 큰 돈이 들어오니 그거로라도 어딘가 가볼 생각이다.
아 글 써야 하는데 귀찮네 정말. 왜 나는 별거 아닌 일에 집착을 하면서도 정작 일은 하지 않는 것인가.
얼마전에 군 입대 날짜가 확정되었다. 오늘 알바를 갔더니 같이 일하는 전역자들이 나를 보고 군대 안갔냐고 물어봤다. 그냥 넌시시 '너는 언제가요?'라고 묻는 뉘앙스가 아니라 '너 같은 액면가가 아직 군대를 안갔단 말이야?'하는 투였다. 네, 아직 안갔는데요... 여름에 갑니다. 가서 낫들고 잡초나 열심히 베고 뽑을 작정이다.
아무튼 군 입내 날짜가 확정되었으니 그동안 뭐라도 해보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영 쉽지가 않다. 남들은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면서 책도 펴내고는 하지만 실상 그 책을 보면 이 사람이 여행에 쏟아부은 돈이 대학생에겐 만만치가 않다. 물론 알바를 매우 빡세게 몇 달 동안 한다면 벌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이미 몇 달 동안 빡세게 알바를 하기엔 군 날짜가 애매하다. 그래도 다음달이면 큰 돈이 들어오니 그거로라도 어딘가 가볼 생각이다.
아 글 써야 하는데 귀찮네 정말. 왜 나는 별거 아닌 일에 집착을 하면서도 정작 일은 하지 않는 것인가.
2015년 1월 15일 목요일
Fist of Jesus

영화가 아니라 게임 리뷰.....
스팀에서 판매하는 인디게임 중 하나이다. 대충 스샷만 보고 골 때려서 시작했는데, 내용도 골 때린다. 예수와 함께 좀비들을 퇴치하러 다니는 게임인데, 그 퇴치하는 방법이 좀비들을 때리고 찌르고 베고, 가끔은 심장을 뽑아버리거나 톱으로 썰어버리는 방법 등이다. 더 골 때렸던 것은 예수와 함께 좀비들을 퇴치하러 다니는 저 왼쪽 사람인데, 예수랑 같이 다니길래 베드로 쯤 되나 보다 생각했는데 유다였다. 예수와 유다의 좀비퇴치라니...
게임 난이도는 쉬운 편이라 하루면 금방 깰클리어 할 수 있다. 갈수록 좀비 난이도가 높아지긴 하지만, 대강 필살기 쓰고 가까이서 때리면 간단하다. 게임 자체의 재미는 글쎄... 한번 하고나서 또 할 것 같지는 않다. 일회용 게임쯤.
2015년 1월 13일 화요일
고대 그리스 철학의 탄생 이어서 (2)
앞서 말한 타 문명권과의 차이 덕분에 글스인들은 이제 종교를 다른 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종교 의식을 뛰어넘어, '자연 현상을 설명해주는 신화'가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로써 유한한 존재 너머에 있는 종적 차원의 무한한 생명력과 자연현상의 발생 원인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한마디로 형이상학적 차원의 의식이 발달하는 것이다.또한 종교적 의식은 형이상학적 사고 뿐만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를 발달시키게 된다. 논리적 사고는 두가지의 원리로 인해 발달되는데, '극성의 원리'와 '유비추리의 원리'가 바로 그것들이다. 이 두 원리 또한 종교적 차원에서 발생하였는데, 극성의 원리는 신과 합일을 이루는 성스러운 순간과 매일매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세의 세속의 순간에서 나왔다. 이 순간들을 하나로 엮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 성스러운 순간들로 구분지은 것은 그 순간들을 각각의 것으로 잘라 나누는 행위로써, 이것은 개별자의 고유한 모습을 개별자와 연속되어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잘라내는 철학적 작업의 기초가 된다.
이렇게 각 항의 독립적인 특성을 인정하고 잘라낸 뒤에는 각각의 항들에 대한 유비적 추리가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각 항의 특성을 비교하고 그 비교로부터 공통치를 이끌어내는 추상적 사유를 발달시킬 수 있다.정리하면, 그리스의 철학은 가족종교로부터 발전한 국가 종교 의식의 특성으로 인해 정치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사고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또한 종교적 의식은 그릿인들로 하여금 각 항의 구분 지음과 동시에 그것들을 상호 비교하게 함으로써 논리적인 기틀 또한 마련해낸 것이다.
2015년 1월 12일 월요일
서양 철학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발생한 이유 (1)
고대 그리스인들의 철학적 탐구는 그들의 종교적 사유에서 나왔다. 철학은 이성의 영역이고 종교는 신앙의 영역인데, 철학이 어떻게 종교적 믿음에서 나올 수 있었는가? 사실 그리스인들의 종교적 사유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리스인들의 종교는 가족종교에서 발전하였는데, 그 가족종교라는 것은 원시시대의 각 가정이 집 중앙 화덕에 불을 피워놓고 그 불을 수호신으로 기렸던 것을 말한다. 가정의 가장은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을 가장 큰 임무로 생각했다. 모든 것은 불로 이루어졌다. 새 가족이 태어났을 때도, 혹은 결혼을 하여 외부인을 들여왔을 때에도 모두 불 주위에서 특정한 의식을 행했다. 바로 이러한 의식이 고대 그리스 종교의 밑바탕이었으며, 국가로서의 종교가 된 시점에도 그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종교를 통하여 나라의 번영과 기원 그리고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를 빌었다. 이는 정치적인 영역과 밀접하게 관련이 닿아있는 것으로, 이러한 그리스의 종교적 성격을 이해해야만 고대 그리스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의식에는 두 가지가 존재했는데, 하나는 청동기 시대의 신들을 다루는 '올림피아' 의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석기와 신석기의 신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카타크토니아' 의식이었다. 올림피아 의식의 경우, 올림포스 신들을 모시는 의식이었으므로 주로 낮에 이루어졌으며, 나라의 안녕과 질서를 기원하는 국가 주도적 의식이었다. 따라서 참여자는 그리스 시민으로 인정된 자들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였는데, 만일 그리스 시민된 자가 의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시민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교의식은 국가 전체를 지배하였고, 나라의 법과 질서를 체계화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올림피아 의식을 통해 그리스인들이 종교와 정치를 밀접하게 관련시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카타크토니아 의식은 주로 다산성을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이 의식에는 시민권을 가진 자들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었다. 올림피아 의식이 종교와 정치의 관련성을 설명해준다면, 카타크토니아 의식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엘레시우스 비밀 의식을 살펴보자. 이 의식은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신화의 의미가 곡물 정령의 죽음과 부활에 있음을 사제가 말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를 통해 그리스인들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무엇인지 사유할 힘을 갖는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신화를 극으로 연출한다. 여기까지는 비단 고대 그리스 뿐만 아니라 다른 문명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다른 문명권들이 의식의 주체를 왕과 여사제로 국한시켰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모두가 의식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신과 하나되는 경험을 통해 신적 질서로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제가 한 알의 밀알을 보여주는 세번째 단계에서는 마침내 모든 존재가 가시적으로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종적 차원에서는 비가시적 영역에 속한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무한한 존재의 현현임을 직관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후 계속.
고대 그리스의 종교의식에는 두 가지가 존재했는데, 하나는 청동기 시대의 신들을 다루는 '올림피아' 의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석기와 신석기의 신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카타크토니아' 의식이었다. 올림피아 의식의 경우, 올림포스 신들을 모시는 의식이었으므로 주로 낮에 이루어졌으며, 나라의 안녕과 질서를 기원하는 국가 주도적 의식이었다. 따라서 참여자는 그리스 시민으로 인정된 자들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였는데, 만일 그리스 시민된 자가 의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시민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교의식은 국가 전체를 지배하였고, 나라의 법과 질서를 체계화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올림피아 의식을 통해 그리스인들이 종교와 정치를 밀접하게 관련시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카타크토니아 의식은 주로 다산성을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이 의식에는 시민권을 가진 자들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었다. 올림피아 의식이 종교와 정치의 관련성을 설명해준다면, 카타크토니아 의식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엘레시우스 비밀 의식을 살펴보자. 이 의식은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신화의 의미가 곡물 정령의 죽음과 부활에 있음을 사제가 말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를 통해 그리스인들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무엇인지 사유할 힘을 갖는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신화를 극으로 연출한다. 여기까지는 비단 고대 그리스 뿐만 아니라 다른 문명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다른 문명권들이 의식의 주체를 왕과 여사제로 국한시켰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모두가 의식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신과 하나되는 경험을 통해 신적 질서로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제가 한 알의 밀알을 보여주는 세번째 단계에서는 마침내 모든 존재가 가시적으로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종적 차원에서는 비가시적 영역에 속한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무한한 존재의 현현임을 직관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후 계속.
가뭄에 콩나듯 쓰는 글쓰기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8월 이후 글을 쓰질 않았었다. 8월이면 여름방학 때였을 테인데, 참 한가했을 시간에 나는 뭘 하고 지냈던가. 물론 알바도 하고 연애도 하고 하느라 나름 바빴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지경이 되도록 블로그 관리를 안한 내가 야속하다. 그래도 해킹되어서 광고글같은 것이나 올리는 처지는 면했으니 그건 그나마 다행.
여름방학 이후 9월에 개강하면서 죽을 것 같은 2학기를 보내고 나니 지금은 정말로 심심하다. 일단 아르바이트도 다음주부터, 그리고 별다른 약속은 없고... 지난주에 여행에서 돌아오기는 했다만 벌써 몸이 쑤시는 것이 술독이 다 나았다보다. 보기만해도 역겹던 녹색 괴물이 이제는 나름 괜찮아졌다.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딱히 무언가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쉽고 편한 블로그나 다시 하자,라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본다. 여하튼 2학기는 정말 안좋은 추억으로 길이 남을만했다. 아니 그냥 2014년의 내 삶이 뒤숭숭했다. 1학기에는 알바로, 2학기에는 학업으로 숨이 컥컥 조여왔다. 당연히 공부도 안됐고, 성적도 보란듯이 최저점을 찍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다음 학기에는 휴학을 한다는 사실. 군대때문이지만....
2014년은 비단 나의 삶만이 묘하게 꼬였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라 전체가 온통 들끓었으니... 그 중심에는 역시나 정치 권력의 줄다리기와 꼼수들이 팽배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세월호 사건이 이제는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같다. 서울시청 광장이나 인터넷의 몇 사이트 그리고 가끔, 정말 가끔씩 나오는 짤막한 꼭지들이 아니면 접할 기회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2014년에는 모든 것이 이랬다. 이제 새해를 맞이하고 10일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작년의 그 모든 것들이 먼 과거의 이야기인냥 추억 속에서 하얗게 조용하게 잠겨있을 따름이다.
이제는 정말 글쓰기 뿐이야... 앞으로는 좀 자주 써보려 노력해야겠다. 영화도 좀 보고, 게임도 좀 찾아서 하고, 책도 다시 읽고.. 이야기도 좀 쓰고... 손이 죽어있는 느낌이다. 손 뿐만이 아니라 뇌 한켠도. 겹겹이 먼지가 쌓여서 쿰쿰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뇌의 한 쪽을 다시 깨끗히 청소해봐야겠다. 우선, 뭐부터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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