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영화는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했던 <화려한 휴가>와 극명하게 다른 점이다. 서울에서 온 택시운전사와 외국인 기자의 시선을 빌려 엿보는 그 날의 광주는, 사람사는 곳이 다 그렇듯 유머가 있고 눈물과 분노도 있다. 영화 초반에는 인간미가 풀풀 넘치는 광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여유는 오래가지 못하고...
2. 처음 10만원이라는 거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택시운전사 '김만석'은 아주 전형적인 서민이자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줄거리나 연출이나 인물들이나 성격이나 이렇게 전형적일 수가 있을까... 심지어는 김만석이 얹혀살고 있는 집의 안주인마저 전형적이다. 그 당시의 시대를 잘 반영했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암튼) (그러고보니 변호인의 '송우석'이랑 김만석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모르겠네) 들뜬 마음으로 10만원짜리 귀한 손님을 스틸(..)한 김만석은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뒷좌석에 모시고 광주로 출발한다. 광주에 가까워질 수록 차량의 후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앞까지 다가서자 아예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있고, 도로 곳곳에 균열이 생겨 그 사이로 잡초가 자라나고 있다. 사람이 산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풍경으로, 사람의 존재 뿐만 아니라 '인간성'까지 부정하는 음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3. 주인공 김만석이 사우디에 가서 일했던 덕분에 영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뭐 그렇다 치더라도, 그 시대의 지나가던 대학생이 영어를 술술 한다는 것은 좀 뜬금없었다. 영어를 띄엄띄엄하는 연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어느 순간부터는 매우 유창한 영어실력을 뽐내고 있다. 팝송만 듣고 가사만 읽어도 이 정도라니... 억지스러움을 느끼면서도 허구한날 팝만 들으면서도 그 정도의 영어도 못하는 나 자신은 대체 뭘까, 하고 생각했다.
4. 그러나 영화는 관객이 억지스러움을 인지하고 부조화를 느끼기 전에, 아주 전형적인 전개를 보여주면서 아, 그럴수도 있지, 하고 생각해버리게 만든다. 우리가 이미 예상한대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이 되려 매우 자연스러움을 더하는 것이다....
5. 광주의 진상을 목격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김만석은 힌츠페터를 돕기로 결심한다. 광주에서 벗어나기 전, 재밌는 연출이 하나 나오는데 바로 김만석과 위르겐 힌츠페터가 앉은 좌석 위치이다. 처음 광주로 갈 때만 해도 김만석에게 힌츠페터는 그저 '손님'이자 '10만원'이었다. 김만석이 백미러로 힌츠페터를 보면서 한국말로 마구 욕하는 모습만 봐도 어떤 마음가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뒷좌석에 앉은 힌츠페터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미러'라는 수단을 통해서 쳐다본다. 이때만해도 둘 사이는 직접적인 교류관계나 동행자의 관계가 아니라 가운데에 벽을 둔 '남'이었다.
그러나 김만석이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를 탈출하기로 한 시점에서는 힌츠페터가 뒷좌석이 아니라 조수석에 타고 있다. 김만석과 힌츠페터는 거울이 아닌 눈과 눈을 맞대어 서로를 응시한다. 그리고 힌츠페터가 앉지 않아서 텅 비어버린 뒷좌석을 백미러로 보니, 인적이라고는 없는 쓸쓸하고 처참한 광주의 풍경이 비친다. 힌츠페터를 조수석에 태우는 것은 김만석이 그를 '손님'이 아닌 동행으로 인식했다는 것이고, 비로소 그의 눈에는 광주의 진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6. 그런데 이런 좋은 연출을 만들어놓고서는 왜 분노의 질주를 보여주는지...? 어디에선가 갑자기 나타난 택시운전사들이 이니셜D를 몸소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 뜬금없었다. 아니 광주와 통하는 도로를 다 막아버렸는데 어디서들 나타나신거야.... 정점은 바로 유해진이 택시를 뒤로 질주하는 장면. 자연스러움을 다 해친 사족이었다고 생각한다.
7. 송강호 연기 너무 잘한다. 송강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연출은 진짜 반칙이다. 배우만 너무 믿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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