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을 수록 무기력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멍청이가 되는 것 같다던 누구의 말에는 온전히 공감하지 않지만, 이해는 간다. 나의 세포의 재생활동은 왜 바이러스의 활동보다 느린걸까. 왜 엔돌핀은 늘 한 발 늦게 등장해서 우울함을 제때 물리쳐주지 않는 것일까. 약을 안 먹어도 된다면 참 괜찮을텐데.
세 끼 식사를 마치고 30분을 기다려 약봉지를 뜯는다. 입에 털어넣고 물을 집어넣어 넘기면 끝. 이렇게 간단한 과정이지만 무섭도록 규칙적이다. 식후 30분. 기억하지 못하면 시기를 놓쳐서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간단한 것마저 규칙으로 나를 얽매이는데, 참 답답하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지 못하다.
사실 기분이 바로 그렇다. 답답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다가 금방 웃어넘기는 것. 어떤 날은 집에서 혼자 조용히 맥주를 마시며 개운한 행복을 느끼지만 또 어느 날에는 둘이서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가 그립기도 하고, 떠들썩한 목소리에 귀가 아팠던 날이 그립기도 하다. 혼자 조용히 집에 있고 싶은데 혹시 집 안에 누군가가 있다면 기력을 잃고 모든 것이 성가시다. 그러나 또 사람이 보고싶은 날에 혼자가 된다면 무신경해지는 것이다. 말 안 듣는 동물 하나를 마음 속에 키우는 것 같다.
아마도 고양이 같은 모습일 거다. 변덕스러워서 맞추기 힘들고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쉽게 파악하기가 어려운 고양이가 살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개를 키워보고 싶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강아지가 있다면 고양이도 조금은 성질을 죽이고 살지 않을까 싶다. 순한 강아지라면...
그러나 또 어느 날은 다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가도 어떤 때는 고슴도치가 좋고, 아니면 좀 더 독특하게 라쿤이나 앵무새나 날다람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물에 대한 나의 관심에도 변덕스러운 고양이가 개입을 하고야 만다. 이런 고양이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약을 먹어야 한다.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엔돌핀은 항상 한 발 늦는 법이니까. 약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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