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 국가의 수장의 태도에 분노하지만 분노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며 비난을 피하고자 애쓰는 모습과 이를 지지하며 파쇼와 나치를 연상케하는 전체주의자의 태도는 분노를 유발한다. 대표라는 것은 책임을 지기 위한 자리이다. 나라의 결정권을 쥐고, 결정권에 대한 책임을 지며, 설령 본인이 결정한 것이 아닌 자신의 측근 및 공인들이 결정한 사안일지라도, 대표라면 그들과 함께, 그들을 대표해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분노를 하게 되면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정확하고 침착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된다.
2.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에 분노한다.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최고존엄의 가치이다. 때문에 안락사나 사형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리고 그가 임명한 사람들은 생명보다 권력과 비용을 중요시 하였다. 작업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고, 크레인 가격을 두고 협상하느라 구조를 지연시켰으며, 권력유지를 위해 민간 잠수부들을 통제하였다.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에 차서 말하면 그 사람들은 이를 곧이 듣지 않는다. 분노에 찬 언어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서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장 냉철하고 차분하게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3. 분노하지만 분노하지 않는다. 정확한 판단으로 정확한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우리끼리의 리그가 아닌, 전 국민을 끌어안아 함께 문제를 논의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서.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분노해서는 안된다. 분노하지 못한다. 비극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이제 고스란히 나와 당신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30일 수요일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2014년 4월 23일 수요일
Aloe Blacc의 Lift Your Spirit.
4월에 들은 앨범들 중에 제일 흥겹게 듣고 있는 앨범이다. 포스터 더 피플의 앨범과 같이 듣고 있는데, 그쪽보다는 이쪽의 앨범이 마음에 든다. 아비치와 함께한 노래를 들었을때는 그냥 피처링 정도를 해줬겠거니 생각했는데, 원곡이 블랙의 노래였다. 아비치 노래를 먼저 들어서 이런 오해가 있었다.
블랙의 <Lift Your Spirit>은 컨트리함이 코팅된 바삭한 그루브 노래들로 가득하다. 첫 트랙을 들었을 때는 조금 심심하다 싶지만 이내 곡에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비트가 아주 재미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퍼렐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더 중후하고, 깊이가 있다. 앨범을 듣는 내내 몸을 흥겹게 해주는 앨범이다.
사실 알로에 블랙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오죽하면 2013도 앨범을 지금 듣고 리뷰를 남기고 있을까. 게다가 블랙 본인의 오리지널 노래가 아닌 아비치의 리믹싱된 노래로 먼저 접했으니. 하기야 퍼렐도 한국에서 확 알려진것은 시크의 덕이 컸으니, 이참에 블랙도 빌보드 상위권에 올라갈 뿐만 아니라 광고 삽입 음악들을 만들어내면... 언젠가 내한할 좋은 떡밥이 생기지 않을까.
2014년 4월 20일 일요일
인문학의 사회적이고 문화적 역할.
이것도 시험 문제. 근데 이건 전에 적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현대 인문학은 과거의 그 역할과는 달리 하고 있다. 현대의 인문학은 개인을 중심으로 맞추어 나간다. 주로 개인의 심리 상태에 조언이나 위로를 던져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역할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는 콘크리트 땅에서 한송이 민들레를 피어나게 하며, 문화적으로는 인간 중심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등장하게 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 괜히 자기 계발서 유행이 사그러들고 마음을 치유하는 치유계(?) 문학들이 나온 것이 아니다.
아 이건 그냥 내일 써도 무방할듯.
현대 인문학은 과거의 그 역할과는 달리 하고 있다. 현대의 인문학은 개인을 중심으로 맞추어 나간다. 주로 개인의 심리 상태에 조언이나 위로를 던져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역할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는 콘크리트 땅에서 한송이 민들레를 피어나게 하며, 문화적으로는 인간 중심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등장하게 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 괜히 자기 계발서 유행이 사그러들고 마음을 치유하는 치유계(?) 문학들이 나온 것이 아니다.
아 이건 그냥 내일 써도 무방할듯.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들.
교수님이 시험 문제로 이런 문제를 내주셨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 철학을 배우는 학도로써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그저 '이성이요'라고 답했다가는 큰 실망을 넘어선 절망을 안겨드릴 것같은 느낌에 이렇게 뻘소리를 남겨본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위에서 말한 대로 이성일까? 그러나 이성은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인간답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성이 있다. 심지어는 인간 말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몇몇은 냉철한 이성주의자인 경우도 있다. 그런고로 이성을 인간다움의 조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감성은 어떤가? 몇 동물도 지니고 있는 감정이란 요소는 인간다움의 요건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을, 우리는 인간답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짐승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고는 한다. 인성이 제대로 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주 이내의 것들은 전부,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도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다. 지식이나 학습활동, 사회적 약속 등.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나는 몇 차례의 물음 끝에 한가지 요소를 발견했다. 바로 이성을 넘어선 감성, 즉 연민이다. 연민은 인간다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내 생각에는 거의 유일한 요소이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그 상대에게 인타까움을 느끼는 심정은 인간다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요소이다. 인간답지 않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 없기 때문에 비판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감정적인 사람도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타인을 생각하지 않기에 욕을 먹는다.
생각해보니 연민과 비슷하게 배려나 양보 또한 인간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배려나 양보는 사회적으로 배운 학습 효과에서 나오거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나중에 돌아올 이득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허나 연민은 다르다. 그것은 나에 돌아올 어떤 이득을 고려하지 않는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물론 연민을 하는 척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연민을 하는 척일뿐, 연민을 한다, 라고는 할 수가 없다.
이정도까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위에서 말한 대로 이성일까? 그러나 이성은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인간답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성이 있다. 심지어는 인간 말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몇몇은 냉철한 이성주의자인 경우도 있다. 그런고로 이성을 인간다움의 조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감성은 어떤가? 몇 동물도 지니고 있는 감정이란 요소는 인간다움의 요건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을, 우리는 인간답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짐승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고는 한다. 인성이 제대로 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주 이내의 것들은 전부,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도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다. 지식이나 학습활동, 사회적 약속 등.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나는 몇 차례의 물음 끝에 한가지 요소를 발견했다. 바로 이성을 넘어선 감성, 즉 연민이다. 연민은 인간다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내 생각에는 거의 유일한 요소이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그 상대에게 인타까움을 느끼는 심정은 인간다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요소이다. 인간답지 않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 없기 때문에 비판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감정적인 사람도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타인을 생각하지 않기에 욕을 먹는다.
생각해보니 연민과 비슷하게 배려나 양보 또한 인간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배려나 양보는 사회적으로 배운 학습 효과에서 나오거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나중에 돌아올 이득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허나 연민은 다르다. 그것은 나에 돌아올 어떤 이득을 고려하지 않는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물론 연민을 하는 척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연민을 하는 척일뿐, 연민을 한다, 라고는 할 수가 없다.
이정도까지만.
2014년 4월 19일 토요일
레포트 끝나고 짬이 좀 나서 쓰는 글.
근데 시험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학점 넘게 들었다면 지금쯤 나는 지옥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서 루시퍼와 쎄쎄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전공시험밖에 안남았다. 죽자사자 교양에 목숨을 걸었던 내가 한심하면서 대견하다.
틈틈히 할 건 다하고 놀 것도 다 했지만.
어휴 또 공부해야지. 4월은 바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학점 넘게 들었다면 지금쯤 나는 지옥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서 루시퍼와 쎄쎄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전공시험밖에 안남았다. 죽자사자 교양에 목숨을 걸었던 내가 한심하면서 대견하다.
틈틈히 할 건 다하고 놀 것도 다 했지만.
어휴 또 공부해야지. 4월은 바쁘다.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정리용 1판.
정리용.
수정판.
막스 베버는 결국 개인이 직업에 충실하여 정직하게 벌어들인 돈이 인정되고 이러한 서클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사회를 주장한 것일까.
현대 프로테스탄트의 경제는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변해왔는가? 그리고 만일 경건주의와 금욕이 경제 발전의 반석이 되었다면, 그들이 허투루 쓰지 않는 그 돈들은 어떻게 다시 사회에 투자가 되었는가?
수정판.
막스 베버는 이 책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종교 개혁이란, 삶 전반에 대한 교회의 지배가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지배 형식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프로테스탄트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까닭은 무엇일까? 프로테스탄트는 금욕적이고 엄격하며 철저한 특성을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테스탄트가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테스탄트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까닭은 무엇일까? 프로테스탄트는 금욕적이고 엄격하며 철저한 특성을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테스탄트가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적인 활동에 잘 참여하는 프로테스탄트와는 다르게, 기독교도들은 경제 활동에 쉽게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학습한 종교적 영향 때문인데, 이러한 영향은 개인의 직업 뿐만 아니라 인생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보통 소수 집단은 다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를 축적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오기 어려우므로 돈을 모아 부를 쌓아두는 방식으로써 힘을 얻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2천년간 떠돌았던 유태인들이 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를 보면, 다수인 프로테스탄트들이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오히려 소수인 기독교도들은 경제적 활동에 관심이 없다.
이는 프로테스탄트가 가진 경제적 합리주의 때문이다. 경제적 합리주의는 근대 자본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그러나 초기 자본주의의 탄생에 기여한 것은 아니다.) 근대 자본주의는 전통적 자본주의와는 큰 차이점을 가진다. 전통적 자본주의의 노동자들은 같은 시간을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받는 것 보다는 어떻게하면 같은 돈을 받으면서 더 적은 시간을 일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더 많았다. 때문에 성과급 제도가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반면 근대 자본주의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을 갖고 일을 하기 때문에, 정당한 방식으로 정당한 돈을 벌어들임에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나온다. 프로테스탄트에서 직업이란, 신이 자신에게 준 사명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프로테스탄트들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며, 그 댓가로 받은 돈을 정정당당하게 여기면서, 그 돈이 소명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의 생각은 근대 자본주의의 기본틀이 되었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서 이윤이 나왔다고 보는 마르크스 주의와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베버는 오히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이윤을 추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로테스탄트의 부는 경건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의 에토스는 무엇인가? 이건 더 읽어봐야 알겠고....
프랭클린의 공리주의. 신용이 있는 사람은 그 신용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이 삶의 의무이다. 실제로 정직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정직한 척을 하고, 그것이 타인들에게 정직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괜찮다.
막스 베버는 결국 개인이 직업에 충실하여 정직하게 벌어들인 돈이 인정되고 이러한 서클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사회를 주장한 것일까.
현대 프로테스탄트의 경제는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변해왔는가? 그리고 만일 경건주의와 금욕이 경제 발전의 반석이 되었다면, 그들이 허투루 쓰지 않는 그 돈들은 어떻게 다시 사회에 투자가 되었는가?
2014년 4월 9일 수요일
현대백화점 갔다가
유니클로 들렀는데 패럴 티셔츠가 너무 예뻐보인다. 이렇게 지름신이 온다. 티셔츠는 그냥 대충 인터넷에서 고르려고 했는데.... 맞은편 에이랜드까지 뒤져봐야지....
2014년 4월 7일 월요일
미국의 이해 강의 피꺼솟.
하도 게을러서 공부를 안하고 있다가, 저번주 주말부터 미국의 이해 공부를 시작했다. 와 정말... 화가 난다.
연방의회는 대통령 탄핵권과 함쎄 연방 판사를 탄핵할 권리도 있다. 이 연방판사의 임명은 대통령이 하는데,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아무래도 연방판사와 대통령은 함께 할 운명인듯 하다. 그리고 미국은 연방판사와 대법원판사가 종신직이라고 한다. 부럽다. 암튼 연방의회는 또한, 장관과 연방판사에 대하여 임명 거부권을 갖는다. 장관이나 연방판사나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그걸 깔 수 있는 권리가 연방의회에 있다. 또한 의회에서는 예산의 심의와 결정이 이루어진다. 이건 뭐 당연하고. 그리고 하원과 상원의원의 2/3이상이 모여 발의한 사안이나 주 입법부의 2/3이상이 발의한 사안을 만일 대통령이 깠을 경우, 의회는 이를 다시 재의결할 권한이 있다.
이에 맞서는 대통령의 권한은 다음과 같다. 일단 발의된 법안을 깔 권리가 있다. 한마디로 거부권. 법안에 대하여 거부권이 있다. 또한 연방판사에 대한 임명권이 있다. 상원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이렇게 쓰고보니 미국 대통령은 권한이 별로 없구나.
연방법원은 어떤가. 법원답게 위헌 판결권이 있다. 의회 법안에 대한 위헌 판결권과 대통령 및 행정부서의 행위에 대한 위헌 판결권이 있다. 한국하고 비슷한듯. 국정원의 행위가 위헌인가 합헌인가 판결을 해야 하는데 늑장을 부리고 있지만서도....
또한 대법원은 사법심사권을 갖는다. 사법심사권이란, 연방의회나 주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고, 더하여 대법원이 헌법의 해석에 있어서 최종판결을 내린다는 명백한 조항은 없다. 없다!
미국 헌법 4조는 다음과 같다. 주 사이의 호혜주의와 특권, 면책, 범죄인 인도와 공화제의 확보.
5조는 헌법의 수정 절차를 명시해 놓았고.
6조는 최고법 조항과 헌법에 준거하여 제정되는 법 그리고 조약이 주법에 우선한다는 내용. 그니까 연방법이 주법보다 우선한다는 말. 결혼법이라든가...
7조는 헌법에 비준에 필요한 사항. 주의 3/4이상의 동의.
헌법의 수정절차는 이러하다. 발의의 경우 위에 써놓았듯이 하원과 상원이나 주 입법부가 2/3이상 동의하여야 이루어진다. 비준의 경우는 주 입법부의 3/4가 동의해야 한다. 또는 3/4이상의 주들이 모인 회의에서 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으아앙 존 아담스 제임스메디슨 개객기들아
연방의회는 대통령 탄핵권과 함쎄 연방 판사를 탄핵할 권리도 있다. 이 연방판사의 임명은 대통령이 하는데,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아무래도 연방판사와 대통령은 함께 할 운명인듯 하다. 그리고 미국은 연방판사와 대법원판사가 종신직이라고 한다. 부럽다. 암튼 연방의회는 또한, 장관과 연방판사에 대하여 임명 거부권을 갖는다. 장관이나 연방판사나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그걸 깔 수 있는 권리가 연방의회에 있다. 또한 의회에서는 예산의 심의와 결정이 이루어진다. 이건 뭐 당연하고. 그리고 하원과 상원의원의 2/3이상이 모여 발의한 사안이나 주 입법부의 2/3이상이 발의한 사안을 만일 대통령이 깠을 경우, 의회는 이를 다시 재의결할 권한이 있다.
이에 맞서는 대통령의 권한은 다음과 같다. 일단 발의된 법안을 깔 권리가 있다. 한마디로 거부권. 법안에 대하여 거부권이 있다. 또한 연방판사에 대한 임명권이 있다. 상원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이렇게 쓰고보니 미국 대통령은 권한이 별로 없구나.
연방법원은 어떤가. 법원답게 위헌 판결권이 있다. 의회 법안에 대한 위헌 판결권과 대통령 및 행정부서의 행위에 대한 위헌 판결권이 있다. 한국하고 비슷한듯. 국정원의 행위가 위헌인가 합헌인가 판결을 해야 하는데 늑장을 부리고 있지만서도....
또한 대법원은 사법심사권을 갖는다. 사법심사권이란, 연방의회나 주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고, 더하여 대법원이 헌법의 해석에 있어서 최종판결을 내린다는 명백한 조항은 없다. 없다!
미국 헌법 4조는 다음과 같다. 주 사이의 호혜주의와 특권, 면책, 범죄인 인도와 공화제의 확보.
5조는 헌법의 수정 절차를 명시해 놓았고.
6조는 최고법 조항과 헌법에 준거하여 제정되는 법 그리고 조약이 주법에 우선한다는 내용. 그니까 연방법이 주법보다 우선한다는 말. 결혼법이라든가...
7조는 헌법에 비준에 필요한 사항. 주의 3/4이상의 동의.
헌법의 수정절차는 이러하다. 발의의 경우 위에 써놓았듯이 하원과 상원이나 주 입법부가 2/3이상 동의하여야 이루어진다. 비준의 경우는 주 입법부의 3/4가 동의해야 한다. 또는 3/4이상의 주들이 모인 회의에서 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으아앙 존 아담스 제임스메디슨 개객기들아
2014년 4월 6일 일요일
골든 보이.
골든 보이는 일본의 만화이다. 코믹스도 있고 애니도 있는데, 애니가 더 재밌다. 암튼.
이 만화는 성인 코드의 만화라 매혹적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워낙 먼치킨이라 온갖 고난과 역경을 가뿐히 넘어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주인공이 도로 경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를 이기는 영상은 상당히 강렬하다. 코믹의 요소와 남자를 들끓게 하는 그 무언가가 적절히 가미되어 있다. 시간나면 골든보이 또 봐야지.
이 만화는 성인 코드의 만화라 매혹적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워낙 먼치킨이라 온갖 고난과 역경을 가뿐히 넘어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주인공이 도로 경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를 이기는 영상은 상당히 강렬하다. 코믹의 요소와 남자를 들끓게 하는 그 무언가가 적절히 가미되어 있다. 시간나면 골든보이 또 봐야지.
2014년 4월 5일 토요일
살인자들의 말 중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말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 네 자신이 보일거야."
그리고 "나는 당신의 남편이자, 자식이다. 나는 어디에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살인마들에게 분노하면서 사형을 시켜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저 분노에 휩싸여 사형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뼘더, 살인마들의 말에 소름을 느낀다.
분노에 휩싸여서는 재앙에 대해 확실하게 대처할 수가 없다. 또한 분노에 휩싸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법이다. 나를 똑바로 보면 네 자신이 보일거야.
그리고 "나는 당신의 남편이자, 자식이다. 나는 어디에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살인마들에게 분노하면서 사형을 시켜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저 분노에 휩싸여 사형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뼘더, 살인마들의 말에 소름을 느낀다.
분노에 휩싸여서는 재앙에 대해 확실하게 대처할 수가 없다. 또한 분노에 휩싸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법이다. 나를 똑바로 보면 네 자신이 보일거야.
알바하고 쓰는 주저리.
1. 혈액원에서 9시간동안 알바 뛰고 왔다. 알바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인간의 몸 속에는 엄청난 양의 피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굉장한 양의 피들을 보았다. 혈장팩이 아주 빵빵하게 차더라.
2. 혈액원의 휴게 코너에 만화책과 음료수 등이 있다. 나도 목마르면 가서 마시고는 한다. 초코파이도 까먹고... 암튼 그런데, 그 휴게 코너에 있는 만화책이 베르세르크였다. 국가 공인 혈액원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베르세르크를 들여놓은 것일까. 설마 간호사분들 중에 베덕이 있는 걸까. 나는 시르케가 좋다.
3. 우리는 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가. 사실 나는 타인의 시선에 별로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닌지라, 내 멋대로 살아가고 있다.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주위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한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 지 걱정한다.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한다. 왜? 타인의 수근거림이 무섭기 때문이다. 왜 무서워하는가? 솔직히 왜 무서워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애정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애정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날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도는 것이다.
4. 그러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사실 너에게 관심이 없을 뿐더러, 너를 좋아할 사람들은 좋아하기 때문이다. 잠깐 스치는 인연에 연연할 필요 없다.
5. 가끔은 가슴 속에 쌓인 정제되지 않은 욕망을 글로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에.
6. 4월은 딸기 그리고 시험과 과제.
2. 혈액원의 휴게 코너에 만화책과 음료수 등이 있다. 나도 목마르면 가서 마시고는 한다. 초코파이도 까먹고... 암튼 그런데, 그 휴게 코너에 있는 만화책이 베르세르크였다. 국가 공인 혈액원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베르세르크를 들여놓은 것일까. 설마 간호사분들 중에 베덕이 있는 걸까. 나는 시르케가 좋다.
3. 우리는 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가. 사실 나는 타인의 시선에 별로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닌지라, 내 멋대로 살아가고 있다.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주위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한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 지 걱정한다.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한다. 왜? 타인의 수근거림이 무섭기 때문이다. 왜 무서워하는가? 솔직히 왜 무서워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애정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애정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날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도는 것이다.
4. 그러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사실 너에게 관심이 없을 뿐더러, 너를 좋아할 사람들은 좋아하기 때문이다. 잠깐 스치는 인연에 연연할 필요 없다.
5. 가끔은 가슴 속에 쌓인 정제되지 않은 욕망을 글로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에.
6. 4월은 딸기 그리고 시험과 과제.
2014년 4월 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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