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론자들은 인생이 짜여져 있다고 주장한다. 전에도 썼던 이야기이지만 조금 다른 소리를 해볼까 한다.
운명론자들은 인생이 짜여져 있다고 주장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삶을 살다가 지쳐서, "어차피 인생은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니까"라며 하던 일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 이를 운명론자들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모든 걸 운명에 맡긴채 손을 놔버리는 사람들을 '숙명론자'라고 하는데, 운명론자들은 숙명론자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을 불쾌히 여긴다. 운명론자들은 모든 일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지만, 인생을 살면서 결정해야 하는 일들에 대하여 사람의 의지가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는 비록 정해져 있는 인생을 살지라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해진 운명과 자유의지의 경계는 어디일까? 내가 선택함으로써 나의 인생이 변한다면 그것은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허나, 그마저도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나의 의지는 그저 그림자일뿐, 실제로는 운명이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운명은 절대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몇몇 종교에서는 그것을 '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운명론자들의 말마따나 사람의 자유의지가 인생에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을 운명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매일 선택한다. 지금 과제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이 과제도 결국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일 내가 숙명론자가 되어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다면 나는 F를 맞게 될거다. 이때 나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은 것인가?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는 행동을 취할때, 나의 선택은 반영될지라고 그것을 의지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 않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과제를 어떤 방향으로, 언제 할지 정한다면 그것은 의지와 선택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과제를 한다. 성적이 나온다. 성적에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가? 만일 운명이라면 내가 어느정도로 열심히 과제를 할지와 어떤 점수를 받게 될지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나의 의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이다. 아 갑자기 쓰다보니 피곤해지네. 운명론은 피곤하다...
다시 써봄.
나는 매일 의식을 가지고 선택한다. 선택함은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다. 내가 자각을 하기 때문에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자각은 생각없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나는 매일 생각하는 셈이다. 생각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확실히 할 수 있다. 내 육신이 실존하지 않는 허구일지라도, 적어도 나는 생각하고 있으니 나의 자아는 존재가 확실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결국 나는 선택에 대한 자유의지를 가짐으로써 나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허나 나의 의지가 무용지물인 운명론에서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 모 종교에서는 운명론을 들며, 나의 존재가 신을 믿음으로써 확인된다고 하지만, 그 신이 실재하는지부터 확인이 되지 않은 마당에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만일 신이 자아를 가지고 실존한다면 우리는 그의 의식 속에서 뛰노는 존재인가. 그렇다면 신의 자아는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불사함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이 문제는 다음에 적기로 하고...
정녕 운명론에서는 나의 존재를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일까. 그렇기에 운명론자들이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일단은 자유의지가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게 된 것일까. 나의 의식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나의 의식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존재는 운명의 흐름을 타고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는 걸까. 운명론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만약 방법이 없다면 나를 입증할 수 있는 자기개척을 주장하는 쪽이 운명론보다 믿을 만한 이론이라고 하겠다. 아니, 자신의 존재 입증 방법이 없다면 운명론은 허구이다. 나의 존재를 입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론이 존재 가능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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