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교환학생을 받았다. 철학과에는 없는 듯 한데.... 다른 과들에 골라서 배치가 된 듯 하다. 그러나 결국 철학과로 온 학생은 없으니 마주칠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한 에콰도르 학생이 동아리에 가입 희망의사를 표명했다. 이것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있다. 학생을 받아줄 것이냐 말 것이냐.
단순히 생각하면 안될거야 없다. 세계는 현재 국경이 무색한 월드와이드.. 상태이고, 에콰도르에서 교환학생이 왔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단은 재미가 있다. 외국인과 함께하는 이색적인 경험. 에콰도르의 문화는 어떠한지 묻고 따지며 한국의 문화를 공유하는 글로벌한 동아리. 왜인지 격이 높아지는 느낌. 그러나 나는 결국 반대표를 던졌다.
우선 찬성의견을 종합해보면
1. 활동을 같이 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
2. 동아리에 대한 열정이 있어 보인다.
3. 에콰도르 학생의 사교성이 좋으면 된다.
4. 조금 더 신경을 쓰면 될 부분이다.
인데, 일단 하나씩 말해보자면...
활동을 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조금 회의적이다. 그 학생은 시한부 동아리 활동을 한다. 1학기만 하고 모국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과연 그 1학기동안 얼마나 많은 영어를, 단 한명의 학생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뜩이나 지금 동기의 숫자는 열명이 넘고, 후배들까지 합하면 그 수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당연히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훨씬 많이 쓰일 것이다. 해외로 홈스테이를 나가서 많은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영어를 배우는 상황하고는 다르다. 여기서는 한국인이 다수고, 외국인은 단 한명이다. 그 한명이 많은 숫자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물론 외국인 한명이 다수의 학생을 가르치는 회화 수업 방식도 있다. 그러나 그곳은 전문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를 목적으로 클래스를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동아리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니라, 사진을 배우러 다니는 곳이다. 자연스레 영어에만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1학기동안 영어를 얼마나 배우고 실력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그 학생은 동아리에 대한 열정이 있어 보인다. 몇번이나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으나 꼭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진심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예를 들어 내가 어느 다른 동아리를 들어간다고 했을때, 그 동아리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운 앞날을 상상하면서 가입원서를 쓸 것이다. 어느 동아리던지 힘들어 보이는 티를 내는 동아리는 없고, 가입하는 새내기 또한 동아리의 힘든 활동을 깊이 고려해보면서 들어가지는 않는다. 딱 보기에 재밌고, 즐겁고, 흥미로워 보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야 누구든지 당연히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보면 생각과는 좀 다르다. 누군가가 이런 부분이 힘들다고 귀뜸해줬던 것과도 다르다. 그러면 점점 동아리에 대한 열정이 줄어들고, 자연 나가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 학생은 더하다. 한국 문화에 대해 철저히 연습해 온 한국인들도 힘들어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고는 하는데, 가치관이 전혀 다른 외국인이 이를 견딜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이 교환학생의 사교성이 좋으면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 사교성이 좋으면 된다. 근데, 안좋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학생이 사교성이 좋다고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아직 만나본 적도 없는데. 좋은지 안좋은지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히, 사교성이 좋을거야, 좋으면 만사형통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이다. 또한 만일 교환학생이 사교성이 좋다고 한들, 그 학생과 함께 활동할 다른 후배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생 뿐만이 아니라, 다른 후배들도 사교성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잘 어울릴 수 있을 테니까. 만일 후배들이 어떤 사소한 일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오해가 생기게 된다면, 일단 언어가 다르므로 말로써 오해를 풀기가 힘들 것이고, 자연스레 오해는 점점 자라나게 될 것이다. 또한, 아예 '쟤는 외국인이니까'라는 사고를 가지게 될 것도 우려스럽다. 같은 동아리의 같은 부원인데, 특별한 사람 취급을 하거나 무시를 한다면 그것은 같은 부원으로써의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끼리 와해되기 딱 좋은 케이스이다.
마지막으로 교환 학생에게 신경을 쓰면 된다는 부분은, 다른 후배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 너무 확실해보인다. 만일 그 학생을 따로 지도한다면 다른 후배들은 그로 인해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도 있다. 동아리 특성상,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하는데, 으레 술자리하면 분위기가 고조되기 마련이다. 분위기가 고조될 수록 사람은 감정적이 되고, 미처 타인을 신경쓸 겨를이 없어진다. 이 상황에서 누가 교환학생을 챙겨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말이 안통하니 분위기에 섞이지도 못할 것이고, 어색한 웃음만을 짓다가 집으로 갈 것이 눈에 선하다... 술자리의 분위기도 깨질까 우려된다.
이건 정말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우리만 좋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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