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9일 일요일

프로파간다 pt.1

 프로파간다가 없는 세상은 어떠할까? 대중속에서 선전이란 의미는 어느새 부정적인 의미로 자리잡게 되었다. 본디 교황청의 종교적 운동의 일환으로써 쓰여진 선전은, 이제는 그 순수성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그들의 국민들을 전선으로 내몰기 위해 프로파간다를 도입한 이후로, 대중은 프로파간다는 물론이요 선동과 같은 운동에 대해서도 눈살을 찌뿌린다. 선전은 왠지 정치적인 속임수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전은 실제로 속임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선전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사회에서 이제 절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가지의 선택권을 부여받는다. 지금 어디로 갈지, 무슨 옷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등등의 고민은 늘 따라온다. 우리는 많은 것들 가운데 대부분은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래서 늘 고민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렇기에 프로파간다가 필요하다.

  언뜻 보기에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정부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나쁜 의도로 조종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수많은 정보들과 상품들의 바다에서 혼란을 줄이기 위하여 우리를 조종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만일 선전이 없다면 어떨까. 매일 다른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매일 다른 정보가 흘러 나온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중에서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수만가지나 되는 선택의 가지는 우리로 하여금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 모든 선택지들을 일일히 살펴보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선택지들을 다 살펴보고 있노라면, 또다른 선택지들이 쏟아져 나온다. '브랜드 뉴'이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다보면, 생산성은 줄어들고 경제나 사회가 망가지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정부는 선전을 도입했다. 어떤 특정 선택지들을 더 많이, 더 자주 선전하는 방식이다. 이로써 대중의 생각을 조종하여 선택의 폭을 좁히고, 효율성을 증가시켰다. 덕분에 사회는 큰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이런 통제의 방식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허나 선전을 통한 통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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