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개인적인 전쟁이다. 지난달부터 아침이 되면 약 맞은 듯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오후가 지나 해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격한 감정들에 사로잡힌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어떤 일인가로부터 매우 더러운 감정을 받았으나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 다들 나만 이상하게 쳐다볼 테니까.
사실 나를 어떻게 볼 사람들이 없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터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초등학교 6학년의 방학은 오직 나만의 세계였다. 가족외에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었고, 가족마저도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이 전부인지라 하루의 대부분을 나 혼자서 보냈다. 매우 기분좋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그 땐 그랬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지내는 것이 어색한 구조로써 태어난 존재인데, 억지로 복잡한 틀에 끼워 맞춰져서는 맞지도 않는 옷과 가면을 쓰고 시시덕 대야 하는 것이 버겁다. 혼자 있고 싶은데.
그래서 요즈음은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에 빠져들면 타인의 존재를 잊을 수 있다. 그곳에는 오직 나 뿐이다. 생각하는 것 만큼 끝없이 넓어지는 광활한 공간속에서 티끌만한 크기로 남아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고, 가끔은 동물들과 함께 한다. 내 머리의 우주속에서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얼마 못가서 현실이 끼어들고 만다. 아마 이 시각이 저녁즈음이다. 다시금 가라앉는다.
나와 전쟁을 일으키는 놈은 나의 가장 오래된 라이벌이다. 어렸을 때는 원수같은 놈으로 여겼지만, 생각해보면 그 녀석 만큼이나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놈도 없다. 원수라기보다는 동행자다. 다만 미운 동행자일뿐이다. 늘 나에게 싸움을 건다. 그렇게 되면 나는 그 싸움을 피할 수가 없다. 피할 길이 없다. 어렸을 적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다시 전쟁에 돌입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겨왔다. 아니지, 이겨온 게 아니라 삶의 전반에 걸쳐 전쟁이 끝난 적이 없구나. 20년동안 전쟁중이다. 언제 끝날지, 누가 이길지 모른다. 그러나 요 근래에는 녀석이 우위를 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다. 나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는 십년이 넘도록 사과 한마디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 또한 나와 아는 사람들은 전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만을 골라서 한다. 물론 내 마음이 불안정한 데다가 좁은 탓이다. 그들에게는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이, 타인을 보는 나의 옴팡한 시선에서는 금세 그릇된 행동으로 비춰지고야 마는 것이다. 대체 왜 이러는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역시나 모든 소통을 끊고 살아가야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육학년의 그때처럼?
모두가 우유부단하면서도 마음이 여리고, 엄청나게 가식적이다. 그들도 자신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감출 수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매우 단순한데, 그것을 가식으로 덮고 싸고 하다보니 마치 그가 세상의 모든 짐을 안고 있는 것처럼 포장되고 만다. 어떻게 아냐면, 내가 그랬거든. 사실 모두 단순한 일들인데 드라마의 주인공마냥 스스로를 안타깝게 생각하다보면 점점 더 가식적으로 변한다. 물론 모두가 가식적이라는 것은 나의 착각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확률이 무슨 소용인가. 내가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 라이벌에게 패배를 인정하려고 했을때, 나는 무엇으로 다시 한번 버티고 일어섰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두번도 아니고, 몇번씩이나 다시 태어났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머리가 복잡하다. 나는 다시 역전할 수 있을 것인가. 작은 전쟁은 언제 끝나게 될까. 영원히 나의 삶과 함께하는 존재인가. 그렇다면 나는 평생을 이렇게 빛과 그림자를 드나들며 지내야 하는 것일까. 마음이 아프다. 나의 복제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와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면서 체온을 느끼고 싶은 심정이다. 타인은 필요하지 않다. 내가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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