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8일 금요일

Jeff Bernat, Pillow Talk




 고라니의 블로그 그 100번째 글.

 우연히 아주, 매우 가까운 사람에게 소개받은 앨범의 곡이다. 그분은 이게 그렇게 달달해서 좋으시단다. 좋아?ㅋㅋㅋ
 음, 근데 이거 가사를 알고 듣는 것일까. 이런 류에 민감하던데.....

 알고보니 가사를 알고 계셨다는 제보.....

 이 노래를 소개 받았을 때만 해도 확실한 느낌이 없었는데, 듣다보니 어느새 감미롭게 들리고, 좋아졌다. 소개받은 노래도, 소개해준 사람도 그렇게 되었다. 뒤돌아보니 걸어온 발자국마다 추억들이 하나씩 고스란히 밟혀있다. 그 때를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 나의 상황이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신가하기도 하고, 정말로 너무나 엄청나게 고맙기도 하다. 과거의 모든 일들이 지금을 위해 계단처럼 차곡차곡 수놓아졌던 것 같다.

 암튼 100번째 글은 제프 버낫의 노래. 역시 노래를 잘 부르는 기준은 목소리이다. 최근들어 목소리의 중요성을 아주 깊게 느끼고 있다. 목소리를 연마해야겠다.




마른 사람의 섹슈얼리티?

 해외로 나가본적이 없는 한국 촌놈 고라니는 외국인들의 취향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는 한국의 취향은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날씬한 사람을 바란다. 날씬하다 못해 마른 사람까지도 원한다. 왜 이렇게 다들 마른 사람을 원하다 못해 자신까지도 마르게 만드려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대부분의 옷들은 슬림핏으로 맞추어져 나온다. 슬림핏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반면 빅 사이즈의 옷들은 근처 어디를 둘러봐도 찾기가 쉽지 않다. 빅 사이즈 뿐만 아니라 어느정도 큰 사이즈의 옷들은 대부분 찾기가 힘들다. 우리는 지금 말라야 사는 사회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무서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그 사회에 적응해 나갔다. 당장 나부터도 살을 빼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옷빨이 잘서거든.

 그러나 옷빨이 잘 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먹는 즐거움들과, 힘든 운동들을 견딘다는 것은 어째 매우 없어보이지 않는가. 한 청소년이 몇개월간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줄여가며 빡시게 알바를 하여 모은 돈으로 땅따먹기를 할 구슬을 사러 나가는 느낌이다. 많은 즐거움들을 포기해가면서까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는 이 강박관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마도 타인의 관념과 생각에 대해 눈치를 보는, 우리의 본성에서 온 것일듯 하다.

 사실 근육질이 조금 섞인 날씬한 몸매를 보고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른 몸매...까지는 왜 호감을 갖는 건지 아직 이해를 못하겠다만, 날씬한 몸을 보고 호감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에서 나온다. 날씬한 몸을 가꾸기 위해서는 철저한 식단 뿐만 아니라 운동도 수반 되어야 하는데, 구석기사회에서부터 강한 남자를 대표하는 것은 바로 근육이었다. 그리고 근육은 운동을 함으로써 부각된다. 또한 사람이 보기에 좋은 비율은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다. 근육과 비율은 인간의 본성 안에 내제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날씬한 몸을 보고 호감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마른 몸은 어떤가?

 스키니한 몸을 가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많은 먹고 자는 즐거움들을 뒤로 할만한 어떤 거대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말라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러나 수많은 즐거움을 잊으려 발버둥치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상한 일이다. 적당한 즐거움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즐거움들을 외면하려고 하는 일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도 자본주의 사회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방송에 나오는 많은 광고와 모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강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큰 사이즈의 옷은 일부러 찾기가 어렵게 하여 억지로 마른 몸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음모론일뿐이다. 어차피 사라질 몸뚱아리를 가꾸고 유지하는 데에는 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얻은 답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라는 이유이다. 남들의 잣대 때문이다. 남들의 잣대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자신이 원하는 즐거움들을 포기해버리기 일쑤이다. 자신의 의사보다 타인의 의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꼭두각시 인형같은 삶을, 나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면서도 방금 전에 또 운동을 했다...
나란 놈이란....

 근데 여자는 모르겠으나, 남자는 마른 사람이 보다 섹시해보이기는 한다. 몸의 선이 잘 드러나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게이인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Why do we fall..?

 So do we learn to pick ourselves up.


 같은 말로는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려가는데 어째 알바만 안풀려가네.

2014년 2월 27일 목요일

Frank Ocean, Bad Religion




 사실 이전부터 <channel ORANGE>에 대한 앨범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노래 소개로 전환!

 프랭크 오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다. 곡을 정말 아름답게 뽑아내는 가수이다. 뮤지크 소울 차일드나 니요 식의 감미로운 알앤비 음악도 좋지만, 나는 프랭크처럼 천천히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창법으로 부르는 알앤비가 더 좋다.

 이 노래는 앨범 <channel ORANGE>에 담긴 트랙이다. 앨범 자체가 워낙 훌륭하고 히트를 친 앨범이라 트랙들이 전부 명곡이고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바로 Bad Religion이다. 물론 타이틀 곡인 Thinkin Bout You나 Pyramids가 더 유명하지만...

 가사가 있는 사이트.
http://danced.co.kr/xe/index.php?mid=translation&search_keyword=frank&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6776

니드 포 스피드와 업그레이드의 미학.



 내가 이제껏 해온 게임들은 장르가 대부분 셋으로 나뉜다. 하나는 피파나 위닝, FM의 축구 장르. 또 하나는 콜옵과 레인보우 식스의 FPS 장르. 나머지 하나는 니드 포 스피드의 레이싱 장르이다. 지금 이야기 할 것은 바로 니드 포 스피드.

 nfs시리즈 중에 내가 가장 많이 플레이 한 게임은 카본이다. 자유로운 도로 질주와 도로 경주 신청, 경찰차와의 손에 땀은 쥐는...사투. 내 기억 속에서 재미 보정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주 재미있게 플레이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성능이 아주 안좋은 차를 하나 던져주고 시작하는 것이 모든 레이싱 게임의 공통된 특징이다. nfs역시 이상한 고물을 하나 던져주고 시작한다. (사실 말이 고물이지,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딜가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차이다.) 그리고 유저는 그 구린...차를 가지고 열심히 플레이 해가면서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차를 업그레이드 하거나 다른 차를 구매한다. 적금을 모아 보다 더 큰 집으로 이사가는 것처럼 게임에서는 더 좋은 차로 이사를 간다. 내 집을 마련했을 때의 기쁨과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내 차를 새로 마련했을 때의 기쁨도 크다. 특히나 이제껏 작은 승용차만 몰고 다니다가 무시무시한 슈퍼카를 구매하게 되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렇듯 레이싱 게임은 업그레이드의 미학을 달리는 게임이다.

 업그레이드. 돈이 모인 유저는 재빨리 차를 바꾸려고 한다. 타던 차량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그대로 두는 것은 대부분 돈이 없을 때나 하는 일이다. 일단 경주에서 승리하여 돈이 생기면 다음 경주를 위해 더 좋은 차를 구매한다. 그리고 구매한 차 역시 나중에는 버려지고, 다른 더 좋은 차로 옮겨 타게 된다. 한칸씩 발전해나아가는 나의 차고를 보며 유저는 그저 흐뭇한 마음을 갖게 된다. 게임은 점점 난이도를 높여서는, 유저가 재빨리 다른 좋은 차를 사도록 유도한다. 때문에 돈이 크게 모일 틈이 거의 없다. 돈이 생기는 족족 써버리는 것이다. 현실의 세상과 비슷해 보이지 않나. 더 나은 것을 사느라고 있는 돈을 써버리는 모습이 현실과 비슷하다. 심지어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도 말이다. 다만, 현실은 난이도가 계속 올라가는 게임은 아닌지라, 나중에는 돈을 저축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업그레이드. 사실 나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값비싼 치장이 아니다. 10만원대의 셔츠를 턱턱 사버린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오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업그레이드는 사람의 내면에서 가능하다.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끌어올렸을 때, 비로소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확실히 특별한 존재이다. 돈이 크게 있지 않아도 스스로 자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존재라니.
 그러나 나는 언제나 각종 옷을 사고 싶은 욕망에 빠져 들고는 한다. 자가 발전은 자가 발전이고, 외부의 모습은 또 다른 것이니까....라고 합리화를 시키고는 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2001년,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세상은 온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걷고 있었다. 2001년의 대한민국은 그렇지는 못했을 것이다. 월드컵 준비로 소란스러웠을 것인데다가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국민들은 벌써부터 들떠 있었을테니까. 아무튼 세계는 고요히 흘러갔다. 오사마 빈라덴이 테러를 감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FBI를 비롯한 정보국들은 이전부터 미국 수뇌부에 테러의 위험성을 역설해 왔었다. 그러나 미 수뇌부는 이를 한귀로 흘려 듣고 말았고, 결국 9월 11일, 납치된 비행기가 고층 타워에 그대로 들이받혀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3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9.11테러로 시작한다. 주인공 오스카는 자상한 아버지를 둔 평범한 소년이다. 오스카의 아빠, 토마스는 늘 오스카와 친구처럼 놀아주며 가끔은 인생의 중요한 단서를 던져놓기도 했다. 오스카는 그런 아빠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러나, 9월 11일, 학교에 있던 오스카는 선생님으로부터 집으로 조기 귀가하라는 말을 듣는다. 집에 돌아온 오스카는 어리둥절한채 엄마의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몇일 후, 아버지가 고층 빌딩타워에서 테러로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오스카와 그의 엄마, 할머니는 토마스를 잃었다는 사실에 슬픈 시간을 보내지만, 다시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준비를 하기 시작하고, 그러던 어느 날 오스카는 아빠의 서재에 갔다가 물병 하나를 깨뜨린다. 그 속에는 열쇠와 함께 'Black'이라고 쓰여진 글씨가 있었다. 오스카는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쇠의 주인 'Black'을 찾기 위해 뉴욕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당시 미국의 상황과 오스카, 그리고 그와 만나는 많은 'Black'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뿐만 아니라 오스카의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로 특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세계대전이라는 이전세대의 큰 아픔에 의해 병이 들고, 서로 상처주기도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고와 방식대로 삶을 재수습해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그중에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도 있고, 나름대로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도 있다. 잊을만하면 어디에선가 불현듯 고통을 주는 아픈 기억에 상처가 벌어지지만, 소금을 뿌리고 연고를 바르며 매일을 버텨나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제 나름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된다.

 나쁜 기억은 나에게 상처를 준다. 또한 나는 나쁜 기억으로 인한 상처를 타인에게 주기도 한다. 모두 지나갈 일이라지만,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나의 기억 속에서는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늘 잊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이럴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유대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의 아픔을 잘 이해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스카가 만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블랙들은 모두 오스카와 유대를 맺는 사람들이다. 블랙들은 오스카와 함께 다른 블랙을 찾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기도 하며, 오스카를 위해 울어주기도 한다. 블랙들은 오스카를 도우면서 자신들도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9.11이라는 뜨거운 사안에 대하여, 정치적인 내용대신 작은 소년의 눈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소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알앤비.




 유희열이 깊은 감명을 받아 몇 번씩 들었다는 그 노래.

 한경록, 이주현, 권정열, 압둘라 나잠의 피쳐링. 피쳐링진이 화려하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이게 뭔 노래야? 할 수 있다.....


 지하실에 처박혀 연습하고 있을 인디밴드들에게 바치는 노래.....

 인디밴드하기가 이렇게 힘들고 서럽습니다, 여러분....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가까이 보세요, 아메리칸 뷰티. 아메리칸 뷰티는 가장 아름다운 장미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 사소한 행복을 뜻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 세가지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 레스터 번햄은 하루하루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아내는 그 옛날 사랑스러웠던 날들은 잊어버린채, 무기력한 남편에게 싫증을 내기 일쑤이다. 외동딸은 무기력한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꽉 차서는 반항의 길을 걷게 된다. 레스터 역시 이런 가족과 생활에 짜증을 느끼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매일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에, 레스터는 딸의 공연을 보러 학교로 갔다가, 딸의 반항기 어린 친구인 안젤라를 보게 된다. 레스터는 안젤라를 보자마자 온갖 망상과 욕정에 사로잡힌다. 그 후 레스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중년의 세상에 대한 반항은 마리화나와 고급 스포츠카를 구매하게 한다. 그리고 안젤라를 생각하면서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레스터 번햄과 아내 캐롤린, 딸 제인과 그의 친구 안젤라, 그리고 제인을 바라보는 소년 리키와 그의 아버지까지. 번햄은 그의 가족과 인생에 지쳐있다가 마침내 안젤라를 만나면서 억눌러왔던 모든 본성이 폭발한다. 뒷일은 생각치 않고 즐거움을 추구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서는 마음가는 대로 아무것이나 하기 시작한다. 중년 중산층의 투정이 반항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캐롤린은 변화한 남편의 모습을 보고는 경악한다. 생각없이 일을 행하는 그의 모습에 아내는 다른 남자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불륜 현장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에게 들키고 난 후, 남편의 조롱을 받은 불륜남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캐롤린은 남편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서 총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지만, 결국 총을 쏘지 못한다. 아니, 쏠 기회조차 없었다.....
 반항아가 된 딸은 옆집 소년 리키를 만난다. 리키는 곧잘 비디오 카메라로 무엇을 촬영하고는 한다. 그의 카메라에는 그가 느낀 것들이 들어있다. 제인 역시 카메라에 들어있었다. 무기력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모두에 대한 벽으로 발전해 나아갈 즘에, 제인은 리키를 만나 구원을 얻게 된다. 하지만 안젤라는 오히려 그 리키에게 자존심을 짓밟히고, 자신에게 빠져들었던 레스터를 향해 마지막 구원을 요청한다. 그리고 레스터는 그녀를 짓밟지 않고, 구해주게 된다. 안젤라와 리키와의 만남으로 깨달음을 얻은 레스터는, 그의 가족사진을 보며 사소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잠시뿐이였지만...

 세상 살아가기가 빡빡하고 힘들 수록, 사람들에게 사소한 것의 기쁨과 행복을 알리려는 시도는 많아진다. 무기력한 사람에게 그가 누리는 특권과 행복을 깨닫게 해주려는 시도가 늘어난다. 그러나 행복을 깨닫는다고 해도 레스터처럼 이미 뒤늦은 때일지도 모른다. 일찍, 쉽게 알아챌 수 있는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다. 깊은 행복은 궁극적이며,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리가 없다. 우리 주위를 돌며 날아다니는 먼지만큼이나, 아주 사소하지만 쉽게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우리의 몸을 드나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조금씩이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그러한 행복들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행복하다.

 나는 행복해.

2014년 2월 26일 수요일

Bon iver, Skinny Love


 사랑스럽지만 가사는 슬픈 노래. 본 이베어의 대표곡 중 하나. 버디가 부른 곡은 커버곡이고 이게 오리지널이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95358&logNo=130183765804

 가사가 있는 블로그.

 정말 멋진 가사이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며, 작은 기대감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고 기다리는 게 정말 힘든 일인데. 반성이란게 언제나 안좋은 일이 지나간 뒤에 온다는 것이 안타깝다.

돈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 물건. 누구든지 손에 쥐었다하면 사람이 곧잘 바뀌게 되는 그 이름. 사실 나도 항상 탐을 내는 그 존재.

 돈이라고 하면 지폐를 떠올리게 된다. 지폐나 동전.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돈 뿐만 아니라 땅이나 집을 비롯한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 돈인 셈이다. 실체가 없는 것들도 돈이 된다. 특허나 좋은 아이디어는 대박 상품이 된다. 돈의 범위는 매우 넓다. 모든 물건들이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들을 정당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가치가 큰 물건일수록 댓가가 크다. 그러나 가치가 크다고 해서 꼭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아닐 수 있다. 고가의 악세서리는 매우 가치있는 물건이지만 나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물건이므로 필요가 없다. 악세서리는 객관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물건이나, 나에게는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건은 그것을 판단하는 이에 따라서 가치가 정해진다. 가치는 상대적이다. 누군가가 유명 디자이너의 값비싼 옷을 보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안목이 부족하니 어떠니 하는 소리를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가치는 상대적이니까.

 돈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이 된다. 같은 백만원이라도 억대 이상의 부자에게는 적게 보일 것이고, 고시텔에 사는 가난한 학생은 그 금액을 보고 한숨을 내쉴 것이다. 돈의 흐름은 이상하리만치 큰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이루어낸다. 부자들은 이제 모든 것을 얻었으니 국가로 눈을 돌린다. 이제는 나라가 돈이다. 돈은 항상 어디에든지 있기 때문에 메마르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자주 싸운다. 대부분 돈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다. 당장 돈이 필요한데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싸운다. 혹은 얻기 위해 싸운다. 돈은 어디에나 있지만, 돈마다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높은 가치의 돈을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다른 사람과 사투를 벌일 수도 있고, 세상과 사투를 벌일 수도 있으며, 자기 자신과 사투를 벌일 수도 있다. 승리자는 패배자보다 더 높은 가치의 돈을 얻는다. 돈을 향한 경쟁은 살기 힘들어질수록 더욱 치열해진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운 좋게도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훨씬 빠르고 간단하게 높은 가치의 돈을 얻는다.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복덩이가 들어와 돈방석에 앉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운 때문이다. 슬프게도 돈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운이다. 리스크가 매우 크기는 하지만.

 우리는 왜 돈에 얽매이는가. 욕망을 정당하게 채워줄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치뤄야 할 댓가가 너무 크다. 댓가를 치루기 위해 우리는 돈을 찾는다. 만약 욕망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아마 매우 편안한 삶을 살 것이다. 남에게는 그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 스스로는 무릉도원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전쟁터에서 벗어나 도원으로 가는 사람.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마음가짐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 2월 25일 화요일

누구를 위한 올림픽 해단식입니까?

 http://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140225181514389

 하지만 정작 선수단 해단식이 끝나자 취재진도, 팬들도 한숨부터 내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작 듣고 싶었던 선수들이 아니라 해단식을 찾은 각 단체 고위 관료들의 각종 '말씀'들이 10분 넘도록 계속됐습니다. 차기 대회 개최지 평창을 소개하는 동영상도 등장했습니다. 결국 예정된 시간의 마지막이 되고 나서야 선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자회견이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은 고작 10분. 질문도 5개만 받을 수 있도록 제한됐습니다.

- 링크 기사 중 일부.



 근래 들어 삐딱선을 심하게 타는 것인지, 기업의 경영진이나 정치판의 수뇌부들의 꼰대 마인드가 많이 거슬린다. 나도 비뚤어진 20대가 되어가는 걸까. 아니면 그들이 점점 융통성이 없어져 가는 것일까.

 사실 꼰대라기 보다는 그냥 이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자신들의 권익을 생각하는 만큼의 1/10이라도 국가와 선수들과 팬들을 생각하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인데.

Uyama Hiroto, Vision Eyes




 재즈힙합을 알게 된 것은 에픽하이 때문이었다. 에픽하이의 노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소개한 nujabes라는 DJ의 음악 때문이었다. 누자베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쓰기로 하고...

 재즈힙합은 저 디트로이트에서 들리는 강력한 비트와 사나운 랩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이 있다. 심장을 간질이는 듯한 아름다운 선율과, 할라피뇨처럼 심심하지 않도록 조금의 감칠맛을 더하는 비트는 재즈힙합 최고의 매력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재즈힙합이 그렇게 보편화 되어 있지는 않지만, 옆나라 일본의 경우에는 유명한 재즈힙합 DJ들이 많다. 누자베스도 일본인이고 이 우야마 히로토 역시 일본인이다. 뭐 멀지 않아 한국에도 훌륭한 재즈힙합DJ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당장만 해도 빈지노가 재즈힙합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시미 트와이스는 뭘하고 있을까.

양우석, 변호인.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변호인>을 보게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감정에 불을 붙이는 영화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가 화를 돋우고, 피해자들과 그의 가족들의 억울함이 눈가를 적시게 한다. 감정이 격하게 역류되어 마침내는 쏟아질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에 대해 평을 하자면,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앙상블이 훌륭하다. 송강호부터 임시완까지 맡은 역에 대한 연기를 잘 소화해내어, 당시 81년도 부림사건의 현장에 함께한 느낌이 들었다. 송강호는 실제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말들을 감칠나게 잘 인용하며 연기했다. 가족들 앞에서 고뇌하는 표정과, 하나하나씩 원하던 것들을 이루어갈 때의 표정. 법정에서의 격한 분노의 표정. 굵직하면서도 소소한 것들을 잘 담아낸 연기를 보여주었다. <범죄와의 전쟁>이후 또다시 악역을 연기한 곽도원은 언제나 옳은 연기를 보여준다. 악역을 맡았을 때에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능청맞게 말하는 대사와 날카로운 표정 연기는 송우석과 대비를 이루며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다른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펼쳤지만 이 두 배우가 특히나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뜨거운 감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오랜시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26년>처럼 민감한 영화 소재로 이슈를 만들었으나 영화자체의 부족함으로 인해 크게 성공하지 못한 영화도 있고, <지슬>처럼 작품성이 훌륭하지만 몇 안되는 적은 수의 영화관에서만 상영하여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영화도 있다. 그러니 <변호인>은 정말 예외적으로 히트한 영화이다. 뜨겁고 민감한 소재를 사용하여 영화 개봉 전에도 화제를 몰고 왔다가, 영화 개봉 후에는 영화자체의 탄탄함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흥행에 성공하였다.

 부림사건 이후,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당시 군사독재정부의 앞잡이를 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수장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며 좋은 말년을 보내는 중이다. 변호인은 마침내 국가의 수장이 되었으나, 정치 장난 놀음의 피해자가 되어 비극적인 끝마침을 했다. 2014년 대한민국은 아직도 부림사건의 연장선에 있다. 정부는 국민을 잡아먹으려 하지만, 국민은 사소한 일들에 신경을 쓰느라 짐승의 발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도 다행스럽게 느꼈던 것은, 이런 영화가 천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나 어디서든 촛불을 들 수 있다. 자신의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따끔하게 지적할 수도 있다. 변호인의 정신을 이어받은 영혼들이 여기저기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지금 이러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오히려 군사독재시절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때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30년전 우리는 아무 책이나 읽을 수도, 아무런 글귀나 쓸 수도 없었으나 지금은 어떤가. 포기하지 않고 걸어나가면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30년 후의 대한민국은 더 나아질 것이다.

 마지막은 <변호인>과 함께 화제가 되었던 곽도원의 무대인사.


2014년 2월 24일 월요일

하 화난다.

 근로장학아 안녕~^^ 저 멀리 가버리는구나....

 알바나 알아봐야겠다.....

 요 근래 기대했던 일들은 거의 다 무너져버렸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무너진다, 이사람아.

2014년 2월 22일 토요일

다르덴 형제, 자전거 탄 소년.


 다르덴 형제가 감독한 영화.

 고요한 감동을 받은 영화이다. 러닝타임 내내 배경음이라고는 거의 없고, 아니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시릴이 경험하는 것들의 소리만이 울린다. 영화는 고요하지만 시릴의 내면은 그렇지 않다. 시릴은 종종 일허버린 자전거와 오랜시간 보지 못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보육원을 뛰쳐나간다. 그런 시릴의 내면과 행동은 어지럽고 폭력적이다. 이런 이 소년을 우연히 알게 된 후, 주말 위탁을 하여 맡을 결심을 한 사만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시험받는다. 시릴은 각종 행동으로 사만다를 괴롭히고, 사만다는 그런 시릴을 정말로 맡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계속해서 시험에 들게 된다. 그러나 사만다의 계속된 노력은 아빠에게 버림받고, 문제아와 어울려 사고를 치고 다니던 시릴을 점차 바꿔놓는다.

 누구든 진심으로 대하면 타인을 바꿀 수 있다.

Casker, 네게 간다.




 날 불려주렴, 한결같던 목소리로.
 날 데려가렴, 꿈결 같던 네 품으로.



새벽.

 새벽에 대한 말이 참 많다. 글이나 가사를 보면 새벽의 감수성으로 쓴 감상이 많고, 사람이 가장 잔인해지는 시각 새벽 2시라는 드립은 이제 유명해졌다. 새벽이 되면 사람의 호르몬이 폭발할 듯이 활발히 움직인다. 감성이 에민해지고 풍부해진다. 그래서인지 오글거리는 생각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뛰어난 감성적 글귀가 구름을 뚫고, 한줄기 빛처럼 내려오기도 한다. 새벽이 뭐길래.

 나는 새벽이 정말 좋다. 밤을 넘어서 나오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 몸 안으로 들어와서 머리와 폐를 말끔히 씻겨주고 다시 날숨이 되어 공기중으로 되돌아가는 찬 공기. 새까만 밤하늘에 희미하게 빛나는 별빛과 달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달빛. 어두움은 사람의 창의성을 극대화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희미한 빛까지 들어와서 보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면, 비로소 그 창의성을 현실로 끄집어낼 의지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많은 생각을 하고, 글로 쓴다. 잠에서 깨어 다시 글을 보면 민망한 날도 있다. 하지만 햇빛이 비추는 동안 이성으로 숨겨놓은 감성을 꺼내는 새벽의 시간이 좋아서, 민망하더라도 글을 다시 만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런 새벽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게 될까. 전화든 톡이든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새벽에 대화를 하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통의 특성상, 보다 과감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서로간의 관계에서 솔직해진다는 것은,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그만큼 상대방이 신뢰가 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솔직해지면, 기분이 좋다. 그만큼 나를 생각한다는 반증도 되니까. 잘때까지도 생각해주면 더 고맙고.

 새벽은 좋은 것이다.


 껄껄껄.


 독자를 정하고 쓰는 글은 참 조심해야 하는구나.

핀란드는 노키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0/2013122001815.html?weekly_s


 기업 하나에 의존하던 국가의 생존기. 핀란드는 노키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과거의 그들은 한국과 너무도 닮았다. 삼성을 비롯한 소수의 대기업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다. 대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는 에전부터 있어왔지만, 대우그룹이 망해버린 지금,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을 보면 그리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조선 비즈가 삼성 빠돌이라는 게 함정....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민족과 국적.

 독일 월드컵 이전이었나 이후였나, 아무튼 어떤 월트컵을 전후한 시기에 모따의 대한민국 국적 취득 이야기가 나왔었다. 참고로 모따는 성남의 리즈시절 팀의 대표 공격수였던 사람이다. 뛰어난 활약과 함께 K리그 팬들로부터 인기가 솟아나던 그가 대한민국의 대표로써 월드컵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만 그렇게 한게 아니라 대표가 되기 위해 국적을 얻으려는 노력까지 했을 것이다. 브라질 국적이기는 하지만, 브라질 대표팀에서 뛰는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 같았고 (심지어 이때 브라질 공격수가 호나우두. 신성으로 떠오르던 선수는 파투.... 프레드도 이때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자신이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국가에서 국적을 얻어, 그 국가의 대표가 되어 월드컵에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축구 팬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모따를 귀화시키자는 사람들과, 한국 혈통이 아니어서 안된다는 사람들. 지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참고로 모따는 결국 귀화에 실패했었다.

 지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한국 축구 팬들을 쌍수를 들고 반길 것이다. 지금 국대의 공격수가 답이 없는...썬더갓이 주전을 먹을 것 같은 상황인데다가, 감독이라는 사람은 국가대표에서 친목질을 하고 있으니, 그에게 압박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써 외국인 용병을 귀화시키는 방안에 찬성할 것이다. 또한, 지금에 와서는 민족과 혈통이라는 것이 국가대표를 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도 팬들이 귀화를 찬성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추성훈이나 빅토르 안, 파비앙이나 줄리엔 강 등, 타국적 취득이나 혼혈출신의 유명인들이 방송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민족의 혈통일까, 자라온 환경일까. 사실 민족의 혈통이라는 것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사람은 추상적인 개념을 교육을 통해 배우면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애초에 혈통이라는 것은 핏줄 이외의 다른 의미는 없다. 물론 핏줄이 매우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에는 많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의 자식이건간에,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그 어떤 사람의 교육이지, 그 사람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아니다. 교육도 핏줄의 한 부분으로 쳐야 하는건가? 엄밀히 말하면 다른 개념인데.... 아무튼 개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의 정신이지, 부모의 혈통이 아니다. 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네.

 그 나라의 대표가 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얼을 대표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국가의 얼을 알고 퍼뜨릴 수 있어야 한다. 그저 국적만 취득하는 것과는 다르다. 아 글이 가야할 길을 잃었다. 나중에 다시 씀.

2Pac, To Live & Die In LA


 LA를 사랑했던 전설적인 래퍼의 노래.


 한국에도 자기 구역이라는 게 있어서, 한국 래퍼들이 구역을 두고 누가 왕인지 대결했었으면 참 재밌었을 듯 하다. 하지만 홍대에서 춘추전국시대를 펼치는 한국형 힙합도 좋다.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2014년 2월 19일 수요일

아스날 덕후들에게 좋은 칼럼

  http://ch.yes24.com/Article/View/24483

 헝가리다 님의 좋은 아스날 칼럼 연재.

 “스윈든 전 이후, 나는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 충성심이라는 것은, 용기나 친절 같은 도덕적 선택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마귀나 혹처럼 일단 생겨나면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결혼도 그 정도로 융통성 없는 관계는 아니다. 바람을 피듯이 잠깐 동안 토튼햄을 기웃거리는 아스날 팬은 단 한사람도 없다. 축구팬에게도 이혼이 가능하기는 하지만(사태가 너무 심해지만 경기장에 가는 것을 그만둘 수는 있다.) 재혼은 불가능하다. 지난 23년동안 아스날로부터 도망칠 궁리를 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럴 방법은 전혀 없었다. 창피스럽게도 (스윈든, 트랜미어,요크, 월솔, 로더햄, 렉스햄을 상대로) 패배할 때마다, 인내와 용기와 자제심을 총동원하여 참아내는 수밖에 없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불만으로 가득 차 몸을 비틀 따름이다.”

-<피버피치> 중.

 축구팬에게 이혼은 있지만 재혼은 없다.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이창동의 밀양.



 내가 본 한국 영화중, 손에 꼽아보는 작품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좀 불쾌해 했다. 난 재밌게 봤지만.

 방황하는 한 여자와 그녀를 지켜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들을 잃고, 믿었던 신에게 배신당하는 여자의 몰락은 안타깝고 암울하다. 그녀는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른 사람처럼, 되는 대로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인생은 그것마저도 뜻대로 되게 하지 않는다. 몸을 주는 것에 실패하고, 자살에도 실패하면서 여자는 또다시 새로운 인생을 맞을 준비를보인다.

 영화가 기독교 비판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쪽 교인들은 영화 관람 중에 그 부분에서 신경쓰일 수도 있다. 허나 감독은 기독교를 비판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음. 그런데도 영화가 이렇게 뽑혔나?

 칸 영화제 경쟁부분 입상,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

Jazzyfact, Take A Little Time




 이제는 유명 랩퍼가 된 빈지노와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가 함께한 재지팩트.

 재지팩트의 1집 앨범 수록곡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피쳐링은 셔니슬로.

수강신청 기념 뻘글.

 비인기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얼마전에 화랑대 폐역을 다녀왔다. 인화할 사진도 없거니 해서, 좀 놀러다닐 겸해서 겸사겸사 간 곳이었다. 지하철에 탑승하고 나서 1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놀러가기엔 너무 먼 곳이라는 것을.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화랑대 역에서 내렸다. 앞에는 서울여대가 있었고 주위에는 아파트가 깔려 있었다. 그 아파트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역세권이었다. 그냥 아파트 바로 앞에 역이 있다.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가면 지하철 입구였다. 아파트를 지나 도로로 나오니 육사 건물이 보였다. 여군 두 분께서 내가 있던 도보의 건너편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내가 갈 화랑대 폐역은 어째 육사로 가는 정문 입구 내에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저 험난하고 무서운 육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옆에 샛길이 보였는데, 그게 샛길이 아니라 폐역이었다. 시멘트니 철근이니 일꾼이니.....공사 장비가 쌓여 있어서 그냥 버린 길인 줄 알았는데 그곳이 화랑대 폐역이었다.

 페역은 사진을 찍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이후에 비극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혼자서 하는 촬영은 참 재밌었다. 바닥에 엎드려서 찍기도 하고, 지나가는 초딩 둘을 붙잡고 착하지 형은 나쁜사람이 아니야 그냥 잠깐 모델만 서주면 돼. 일꾼 아저씨도 궁금해 하더라고. 모델! 모델을 서자!! 해서 둘을 세워놓고 찍기도 했다. 근데 너무 멀리서 찍은 것 같다...

 암튼 그랬다는 소식. 마무리를 어떻게 하지?

2014년 2월 16일 일요일

올림픽과 월드컵, 애국심 마케팅.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한국축구의 역사를 보여주는 <축구는 한국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저서는 강준만. 제목만 빼면 좋은 책이다. <축구, 그 빛과 그림자>와 <피버피치>와 함께 축구도서 3대장이라고 (나혼자서) 부르는 책이다.

 <축구는 한국이다>에는 한국축구의 역사와 함께, 그 시절 어떤 일이 함께 일어났었는지도 소개해준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월드컵 마케팅 파트였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각 방송사들은 '월드컵 채널'을 지겹도록 강조하고, 기업들은 애국 마케팅을 시작한다. 바야흐로 기업이 이끄는 애국심의 시즌이다. 사람들이 이상하리만큼 과도하게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이 기간동안에는 다른 이슈나 뉴스는 오프 상태이다.

 이는 올림픽도 마찬가지이다. 인기가 많으면 많을 수록 더 많은 마케팅의 수단이 된다. 스포츠 스타들이 직접 광고에 나오기도 한다. 만일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라면 올림픽 폐막 후 3개월쯤은 어렵지 않게 유명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기업체들은 그에게 돈을 쥐어주며 후광의 효과를 나눠가지려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가 나온 광고를 보고는 미소를 짓는다. 저 사람이 나를 자랑스럽게 했어. 마지막에 나오는 기업 로고는 긍정적인 생각에 미소를 짓고 있는 국민에게 강하게 어필한다. 금메달리스트가 즐겨 이용하는 애국 브랜드라고.

 본래의 스포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이는 펄쩍 뛸만한 일이다. 스포츠는 깨끗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에 자본이 대거 투입된 것이다. 자본 없이는 스포츠를 계속해서 할 수 없는 현 시대의 상황은 기업들의 애국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과거 그리스 시대의 스포츠는 즐거움을 위한 활동이었지만, 현 시대의 스포츠는 자신의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절체절명의 순간의 연속이 되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국민이 대신 가져가고, 선수는 댓가로 명성과 돈을 얻는다. 물론, 비인기 스포츠는 이렇게 하기가 어렵다.

 과학적이고 자본적인 스포츠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마도 정치판과 큰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스포츠를 선택한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스포츠로 눈을 돌리게끔 한다. 이 때. 스포츠에는 많은 금액의 돈이 지원될 것이다. 지원을 받은 스포츠는 더욱더 성장하게 되고, 자연스레 모든 이의 눈은 그곳으로 향한다.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우리의 세금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확인한다. 금메달일수도 있고, 노메달일수도 있다.  

2014년 2월 15일 토요일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에

 돈이 아니라 사랑을 봐야 한다.


 잘 배우고 갑니다.

맥긴리 사진전.

 누드는 최고의 피사체이다. 그렇지만 인물의 표정과 자세, 구도가 훨씬 중요하다.

Coldplay,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콜드플레이의 정규 2집 앨범이자 초대박을 터뜨린,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완벽에 가까운 앨범.

 서정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트랙은 politik, in my place, god put a smile upon your face, the scientist, clocks. 

내가 늘상 가는 사이트가 있다.

 3개 정도 되는데 2개는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고 하나는 대형 종합 사이트. 참고로 저 2개의 축구사이트에 알싸는 없다. 싸줄도 없다. 팬사이트니까. 대형 종합 사이트도 유머 사이트.

 방금 전에 저 하나의 대형 종합 사이트를 갔다가 매우 충격을 받았다. 쇼트트랙 계주 경기에서 이호석 선수의 실수로 금메달 획득이 좌절되었고, 질타를 받는 이호석 선수에 대하여 옹호글을 올린 신다운 선수. 오늘 사이트에 가보니 신다운 선수가 정제된 새 글을 써 올렸었다. 반성과 용기가 들어간 매우 좋은 글이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사이트의 회원들은 신다운 선수를 깎아내리며 욕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 난독증인가? 아니면 내가 난독증인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나중에 달린 다른 댓글들을 살펴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난독증은 아닌 셈이다.

 솔직히 말하면, 신다운 선수를 욕하는 그들에게 화가 났다. 매우 화가 났다. 이 새끼들은 글을 어디서 배워온거야? 세종대왕님이 정성들여 만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 한글을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니. 참 가엾다. 그렇게 한국 국대를 까고 싶었다면 일기장에나 적을 것이지, 자신의 의견 표출이라는 되도 않는 방패에 숨어 손가락이나 깔짝대는 꼴이 우습다. 또한, 갑작스레 닥친 어려운 상황에서도 몸을 만들어 올림픽에 참가해 준 선수가, 계주에서 실수를 했다고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인간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라면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갑작스럽게 동료가 부상을 당해서 땜빵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안현수에 대한 팬심은 안현수에서 끝내야 한다. 현수앓이가 왜 한국 국대를 향한 매서운 칼날이 되는지 모르겠다. 빙상연맹을 욕하려거든 빙상연맹을 욕해라. 열심히 노력한 선수들의 땀까지 욕할 필요는 없다. 다들 미친것같다. 사실 빅토르 안을 응원하겠다, 라는 글이 어느 순간 굉장히 불어나면서부터 이미 예측된 상황이지만..... 다수의 사람이 안현수를 응원하다보니 일부 어떤 이는, 자신과 함께 안현수를 응원하는 다수가 마치 자신의 편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안현수의 편이지, 안현수를 응원하는 네 편이 아니다.

 안현수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빙상연맹에 대한 분노는,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의견을 교류할 수록 점점 더 심해졌을 것이다. 마침내는 도를 넘어서서 선수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이호석 선수가 실수를 하자, 좋은 사냥감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난도질을 한다. 병신들아 그 시간에 부모님께 효도나 더해라.

 그리고 빅토르 안 금메달 축하해요.

2014년 2월 14일 금요일

포레스트 검프.

 지능이 조금 모자란 포레스트가 성장하는 인생을 감동적으로 풀어낸 영화. 감동적인 영화답게 영화 속 명대사도 많다. 특히나 포레스트의 어머니가 그의 아들에게 해주는 조언이나 포레스트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을 독백으로 풀어낼 때. 심장을 울리는 명대사들이 나오는 영화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도 있다. 세상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행동한 포레스트는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반항하고, 분노한 그의 소꿉친구 제니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세상이 하라는 대로 따라가라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는 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사실은 이 쪽 해석이 더 심도있는 해석으로 보여진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먹어보기 전에는 어떤 맛의 초콜릿인지 알 수 없듯이,
 인생에서도 끝까지 해보기 전에는,
 무슨 일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초콜릿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듯이
 우리의 인생도 선택의 연속이고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쓴 맛을 경험할 수도, 인생의 달콤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지금 내가 먹은 초콜릿이 쓴 럼주가 든 초콜릿이라고 해도
 실망하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달콤한 초콜릿들이 더 많이 남아있을테니까.


 -<포레스트 검프> 중에서



2014년 2월 13일 목요일

피노키오.

 어떤 만화를 보다가 궁금해졌다. 피노키오의 코는 거짓말을 할 때 늘어난다. 고로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피노키오의 코는 피노키오가 아는 상식 내에서의 거짓말을 할 때만 늘어나는 것일까?  만일 피노키오가 모르는 A라는 진리가 있을 경우, 피노키오가 A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은 B이다, 했을 경우에도 코가 늘어나게 되는 것일까.

 피노키오가 시험 문제를 풀고 있다고 가정하자. 문제를 술술 풀다가 어느 한 문제에서 막혔다. 답을 모르겠다. 객관식 문제이기 때문에 번호가 있다. 1번 아니면 2번이 정답이다. 머리를 싸매다가 도저히 모르겠어서 꼼수를 쓴다.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답은 1번."이라고 중얼거린다. 갑자기 코가 늘어난다. 피노키오는 웃으면서 2번 정답을 찍는다. 이것이 가능한가?

 거짓말이라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상식 밖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은 자신이 아는 사실을 틀리게 말했을 경우 이루어진다. 나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워드인 것을 안다. 그러나 남에게는 내가 손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 때에 거짓말의 행위는 이루어진다. 반면에 나는 내일 날씨가 맑을지, 흐릴지 알 수가 없다. 조심스럽게 내일 날씨는 맑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궃은 비가 내리고 있다. 이 경우, 거짓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잘못된 정보를 말할 것은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다. 일단 나 스스로가 내가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참과 거짓의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짓말의 핵심은 판단이다. 참과 거짓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의 경우에는 거짓말의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으나,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루어질 수 없다.

 고로 피노키오는 그의 상식 밖에서의 문제에 대하여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고로 코도 늘어나지 않는다. 만일 피노키오가 그의 상식을 초월한 세상의 어떤 거짓이든지 말할 경우 늘어나는 코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피노키오는 몇 년이 지나지않아 우주를 이해한 현자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메 - 인문학으로 읽는 재패니메이션.

 모든 사람은 중2병을 겪는다. 중2병은 이제 개그의 소재를 넘어, 사춘기와 비슷한 성장통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할 만큼 큰 개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나 역시 중2병에 걸린 적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후, 기가막히게도 중2라는 엄청난 타이밍에 그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나의 덕력이 폭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본 작품들이 결코 매니악하거나 비주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에반게리온이야 이미 대중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고, 건담은 말하면 입 아픈 대형 아니메 상품이다. 문제는 다른 작품들에 있었다. 아키라는 일부 매니악한 독자들만 아는 작품이고, 공각기동대나 어마금이나 어과초...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러했다. 나는 조금 깊게 빠져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즈음의 덕후들을 보며 '나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하며 흐뭇한 안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는 사실이다. 취존이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애니메이션 하면 세 종류를 떠올릴 것이다. 하나는 뽀로로같은 아동 애니메이션.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만든 작품들이 많다. 한 번 히트를 치게 될 경우에는 떼돈을 벌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한국 만화 기업들이 아동용 아니메 시정을 노린다. 사실 아동용이 아닌 아니메는 아직까지 한국 주류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두번째는 디즈니나 픽사같은 미국 아니메. 픽사가 디즈니에 합병되었으니 그냥 디즈니 아니메이다. 어린시절 90년생들의 주말 아침을 책임졌던 티몬과 품바같은 작품들이다. 몬스터 주식회사나, 각종 공주들이 나오는 디즈니 아니메가 유명하다. 최근에는 겨울왕국이 빅 히트를 쳤다. 마지막으로는 일본 아니메, 즉 재패니메이션이 있다. 흔히 말하는 덕후쪽이 이쪽이다. 원피스나 블리치, 나루토같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부터 루리웹 유저들이 덕질할만한 비주류 작품까지, 그 범위가 넓다. 내가 소개하려는 책은 이 재패니메이션에 관한 책이다.

 재패니메이션에 관심이 있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캐치하고 싶은 사람들은 수잔 박사가 쓴 <아니메 - 인문학으로 읽는 재패니메이션>이란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키라나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부터 시끌별 녀석들이나 옛날 마법소녀물들의 분석까지 폭 넓은 지식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좀 어렵다. 그렇지만 아니메를 보고 그냥 슥 지나갈만한 내용을 잘 잡아내어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자세히 알려주기 때문에 이쪽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꼭 봤으면 하는 책이다. 마법소녀들의 벼닌 장면에 담긴 섹슈얼리티부터 각 시퀀스의 연결장면에 숨겨진 의미, 극적으로 치닫는 아니메 엔딩의 의도 등 많은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뜨거운감자, 럭비공




 가끔은 엉뚱하고 다혈질이지만, 때로는 진지하게 세상을 애기해.


 구글 블로그에 유투브 영상 공유 기능이 있다. 방금 알았다. 역시 구글이야, 가차없지.

2014년 2월 12일 수요일

대처를 못하겠다.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과, 들은 잡지식들과, 배움과, 고민의 흔적들이 아무런 쓸모도 없어지는 순간이지.

 으어어엉러엉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엇이 맞는 길인가. 양자택일은 정말 잔인해.

상도동 밤골마을 후기

 사진을 찍으러 가기 위해 내가 꼽은 장소들 중 가장 가까운 곳이다. 대학과도 가깝고 해서 동방에서 대기하다가 친구가 와서 같이 같다.

 달동네라기에 이전에 갔던 홍제 개미마을을 생각하고 갔다. 그런데 개미마을보다 길이 훨씬 많고 넓다. 오히려 밤골마을이 개미굴처럼 연결되어 있어, 개미마을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길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폐가는 심심치 않게 보인다. 마을 초입부터 폐가가 연달아 두 채가 있다. 청소년들의 탈선 행위 장소로 자주 이용된 과거가 있는 모양인지, 경고문과 함께 문을 봉쇄시켜버렸다. 그러나 좀 더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있는 퍠가들에는 그러한 경고문이 없었다. 마을 위쪽에 있는 퍠가까지는 아무래도 길도 어둡고 으스스한데다가 올라가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에 비행 청소년도, 경찰도 그곳까지 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폐가 대부분이 완전히 허물어져 있는 터라 발 붙일 틈도 거의 없었다.

 퇴폐적인 분위기를 찍기 위해 간 곳이었는데, 예상보다 햇빛이 적게 들고 퇴폐적이기보다는 안쓰럽고 공포스런 분위기가 풍겼다. 두 롤의 필름을 가져가서는 한 롤만 겨우 찍고 돌아왔다. 나머지 한 롤은 나의 멍청한 실수로 인해 쓰이지도 못한채 생을 마감했다....

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윤형빈의 경기에 대하여 짤막한 생각.

 윤형빈의 카운터 펀치로 극적인 그의 승리로 마감된 것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씁쓸해지는 사실은, 상대선수가 임수정 선수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란 것.

 이를 나중에 알게 된 네티즌들은 경기를 개최한 기획사의 홍보와 기자들의 물타기등을 지적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윤형빈이나 네티즌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홍보가 잘못되었고 기사도 잘못된 것이 맞지만, 경기가 치뤄지기 이전에 윤형빈이 상대 일본 선수가 임수정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란 것을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임수정을 생각한 복수극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경기가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윤형빈의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졌다. 이 과정에서 네티즌은 사실 관게를 알아보지도 않은 채 그저 우르르 인기몰이에 탑승했을 뿐이었다.

 에에 대해 한 네티즌은, 윤형빈이 인기몰이를 위해 그렇게 힘들게 준비를 해왔겠느냐, 라고 하지만 연에인들에게 인기는 연예인 그 자체와 같은 것이다. 힘든 준비과정을 겪은 것은 맞지만, 그 준비가 임수정 선수의 복수극을 위한 것은 결국 아니지 않은가? 상대 선수가 임수정 선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윤형빈 본인의 데뷔무대를 위해 열심히 운동한 것 뿐인데, 마치 애국자가 된 양 그의 노력을 몇 갑절로 포장해서 띄워주는 지금 사태가 씁쓸하다. 윤형빈도 자신의 인기를 얻기 위해 그렇게 자신을 포장했어야 하나 싶다. 솔직히 윤형빈은 칭찬보다 비판을 받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인기를 얻기 위해 상대 선수를 희생하였기 때문에.

 또다른 네티즌은 기획사의 홍보와 기사들의 클라스 넘치는 왜곡 기사 때문에 진실을 알 수가 없었다, 라고 주장한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언론이 투명해야 하는 것은 맞다. 기자들과 홍보의 책임, 분명히 있다. 그러나 항상 기레기, 기레기 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런 왜곡 기사는 철썩같이 믿는 게 이해가 안된다. 이후에 진실을 알고 난 뒤에야 기자가 기사를 이따위로 써서 내가 속았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행위는 꼴사납다. 그냥 본인도 몰랐다고, 일본 선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연에인의 인기는 한 순간이다. 비호감이 호감되는 거 순식간이고, 호감이 비호감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어느쪽이든 한 쪽이 우세한 분위기에는 다른 쪽의 생각은 싸그리 묻혀버린다. 윤형빈이 이를 잘 알았으면 좋겠다. 인기 얻으려고 남 파는 행위도 이제 하지 말고....

버벌진트, 무명



 버벌진트의 언더시절 앨범. 지금이야 뭐 거의 오버 랩퍼니까.

 추천트랙은 리믹싱 된 Favorite과 투올더힙합키즈 투, Trouble, 삼박자, 90년대에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앞으로는 이렇게 적어야지.

우리는 모두 반대할 준비가 되어있다.

 몇 일 전 썼던 사이트 내의 회원간 갈등 문제로 인해 나는 여러 의견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조그마한 사이트에서도 파벌을 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씁쓸하였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나는 그러한 분쟁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소크라테스의 말을 되새겼다. 무지의 지는 앎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의견의 대립이 이루어진다. 대립 후 화합을 이루어내거나 그대로 갈라서버린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과오나 잘못된 지식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이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사견을 관철시키려다가 결국에는 연대를 깨어버린다. 본인의 과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상대방의 의견에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주제와 관련된 타인의 다른 생각에 반대를 한다. 그는 언제나 반대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

 반대를 하기 위해서는 그 주제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주제에 대해 논쟁을 하기 이전에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상식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혹여나 틀리진 않았는지, 어떤 새로운 사안이 있는지를 알아본다. 억측을 일삼는 사람들은 이러한 준비운동을 하는가. 그들의 조사 범위는 항상 그들의 생각이 닿는 범위까지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자료만을 조사한다. 그 후 이어지는 것은 맹신이다.

 자신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자료들을 열심히 찾다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자료를 왜곡하기도 한다. 왜곡된 자료를 들고 나와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 반박할 경우, 별다른 재반박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료를 맹신해버린다. 무조건 이 자료가 맞다. 갓난아기 수준의 안타까운 사고이다. 스스로도 조사를 하다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에도 애써 고개를 젓는다. 진실을 깨달았음에도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비참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모여서 큰 불을 밝히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모여서 큰 불을 모함한다. 어리석기에 현명한 이들을 앞질러갈 수는 없지만 더럽힐 수는 있다. 때문에 항상 더렵히려고 한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존재에 대한 생각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조목조목 반박당하면, 괜히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자존심이 구겨진다. 상대방이 누구든 간에 내가 더 잘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잘난 나의 의견을 부정하다니,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사이클은 돌고 돌아 제 살을 깍아먹기에 이른다. 자신의 눈에야 자신이 잘나보이고, 무엇이든 맞는 말을 하는 것 같겠지만, 안타깝게도 타인의 정상적인 시각에서는 그만큼 피곤한 인간이 없다. 끝내 자신의 의견이 완파될 경우에는 상대방의 결점, 환부를 들춰낸다, 말꼬투리를 잡아가며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상대방을 더럽힌다. 내가 오르기보다 남을 내리는 것에 집중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그는 반대할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반성해야 한다. 나는 이런적이 없었는지. 나도 무언가에 휩싸여서는 타인에 대한 말에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코웃음치지는 않았는지. 꽤 많이 그랬던 것 같은데. 엄청난 자만심으로 갑옷을 챙겨입고는 철면피를 쓴 채 귀를 막아버렸던 기억이 여럿 있다. 그나마도 내가 기억하는 게 이정도인데, 사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항상 웃음이 넘치는 연대는 없다. 분명히 고비를 맞을 때가 있을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무지를 감추려고 무딘 애를 써왔다. 앎으로 가는 지름길을 봉쇄시켰다. 결국 연대는 깨지고, 자신은 독불장군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먼저 내민 손을 뿌리치는 순간 사태는 훨씬 악화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이다. 사실은 지금도 알아가는 중이다.

 반박할 것이 없으면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하라는 누군가의 말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2014년 2월 10일 월요일

가볼 곳

 화랑대 폐역

 상도 밤골마을

 강남 구룡마을

 화성 남양성지, 용인 민속촌


 오늘은 귀찮으니까 낼 부터 가야지.

아무래도 앨범을 적어야겠어.




 Drake의 <Thank Me Later>. 장르는 힙합인데, 드레이크의 음악은 힙합이라고 특정짓기가 어렵다. 비트는 칸예와 비슷한? 느낌이고, 드레이크는 랩 뿐만 아니라 노래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힙합계에서는 잡탕이라고 많이 까이는 가수.

 그러나 잡탕이면 어떠랴,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드레이크의 앨범은 클래식한 비트의 힙합 혹은 R&B는 아니다. 신시사이저를 즐겨 사용하며, 드럼 비트를 자주 쓴다. 랩은 결코 빠르게 하지 않는다. 느리고 엉성한 느낌으로 랩하지만 실력은 남들보다 뒤지지 않는다. R&B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인데, 보통의 R&B보다는 소리가 퍼지는 느낌으로 부른다. 곡 분위기들도 클래식 힙합과는 다르게 팝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몽구스, 나빗가루 립스틱




 오늘은 앨범이 아니라 한 트랙.

 참고로 윗 사진은 구글에서 '나빗가루 립스틱'을 검색했을 때 처음 뜨는 사진이다.

 나빗가루 립스틱은 몽구스의 <Zoo>라는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이 곡은 어느 네티즌에게 추천을 받아 들었던 곡이다. 그분 말로는 들으면 멜랑콜리한 기분이 되는 곡이라고 한다.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나긋나긋한 노래.

2014년 2월 9일 일요일

열한번째 사과나무.

 중학교 방학 중에 집에서 잉여짓하다가 질려서 심심하던 찰나에 읽은 책이다. 총 두 권으로 파트가 나뉘어져 있다. 잉여짓을 하던 내가 무심코 읽었다가 참 씁쓸해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알기로는 꽤나 유명한 책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내 주위의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듯하다. 인기를 끌었던 과거가 좀 오래되서 그런건가. 책에도 전성기가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소개하자면, 남자의 사랑이야기. 그것도 지고지순한 순애보이다. 순애보 앞에 온갖 시련과 역경이 닥치지만 끝까지 순애보를 지킨다.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좋아할 책이다. 주인공이 멍청해 보이면서도 감동적이다. 눈물샘 자극 잘 받는 분은 공공장소에서 읽으면 좋지 않을 책이다.

 한편, 사랑의 무게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그 사람을 정말로 사랑해서 만나는 것인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사귀는 것인지, 아예 처음부터 몸을 노리고 사귀는 것인지. 몸을 노리고 사귀는 사람은 달리 할 말이 없고... 좋아해서 만나는 것과 어쩌다보니 만나는 것은..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책의 주인공은 거의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다. 다시 말하면 외모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나는 저 사람과 아무런 추억도 없는데 사랑에 바진 것이다. 참 단순하다. 그와 함께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외모만 보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단순하고 슬픈 일이다. 그리고 이 단순하고 슬픈 일은 아주 종종 벌어진다.
 사랑이 이렇게 단순하다. 깊게 이해하려고 하면 지는거다. 좋은것도 이유가 어디있겠어, 그냥 좋은거지.

 개인적으로는 저음부터 사랑해서 만나는 케이스보다는 만나다보니 서로의 부분을 채워주어 사랑하게 되는 쪽이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어쩌다보니 만난들 좋기만 하면 큰 고민은 안해도 될 것 같다. 내가 왜 얘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만나는거지?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다보니까 좋아하는거지 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후폭풍은 니 감당.



도서글이었는데 완벽한 뻘소리글이 되었다.

어제 음악 소개를 안해서 오늘 하나 더.

 근데 쓰다보니 느낀건데 앨범을 소개할 것이 아니라 트랙에 있는 노래를 하나씩 소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노래 한곡을 소개하던지... 고려해봐야겠다.




 Birdy의 첫 앨범. 앨범 이름도 Birdy. 무려 96년생이다.

 오디션에 참가하여 인정받아 데뷔한 케이스.

 참고로 앨범은 커버곡 모음집이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여 불렀다.

 버디의 맑고 슬픈 목소리와 차분한 비트, 환상적이고 오묘한 분위기가 잘 맞아 떨어지는 앨범. 앨범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지만 어둡지 않다. 화려한 햇살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시선은 그림자를 향한 느낌이다. 대충 감이 오려나?

Discloure, Settle



 신인그룹 disclosure의 첫번째 정규 앨범. EDM장르.

 작년 최고의 신인으로 주목받았던 그룹인데, 하필이면 다프트 펑크가 컴백하는 바람에 묻힌 감이 있다.

 디스클로저의 노래는 세련되었다. 지기징거리는 전자 소리보다는 깔끔하고 뚝뚝 떨어지는 음악적 색채가 드러나는 앨범.

 하루빨리 F for you를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다. 추천트랙은 F for you와 You & I 인데 뭐 다 괜찮은 곡들이니 이글을 보는 불특정 몇 사람도, 들어보지 못한 앨범이라면 들어보시길.

SNS에서의 소통은 어떤 커뮤니케이션인가?

 소통에는 말로 하는 것과 글로 하느 것이 있다. 말로 하는 것은 다시 나뉜다.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는 것과 전화등의 수단으로 목소리로만 대화하는 것. 대면하여 하는 대화는 소리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 등을 동반하여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목소리로만 대화하는 경우에는 표정이나 몸짓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목소리의 높낮이라던지, 억양 등이 동반된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목소리 뿐만이 아닌, 표정이나 몸짓, 억양 등으로 우리는 상대방의 대화 주제 뿐만 아니라 ,감정도 어떤지 알 수가 있다.
 글로하는 소통은 좀 다르다. 도서로 하는 소통이나 이메일, 편지, sns등이 속한다. 도서나 이메일, 편지 등은 글의 무게가 보다 무겁다. 여러번 생각을 하고, 글을 가다듬어 마침내 최종적인 글이 완성되면 그것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도서나 편지는 손글씨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마다의 개성있는 필체를 맛볼 수 있다. 필체에 상대방의 감정이 묻어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메일과 sns의 경우는 필체가 획일적이다. 모두 같거나 비슷한 필체를 쓰게 된다. 자판을 두드려 쓰는 글은, 필체보다 글의 내용에서 개인의 개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고작 한 두 줄 적는 경우에는 그나마도 드러나지 않고는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sns는 긴 내용의 글을 원하지 않는다.

 요약바람. 세줄 요약. 긴 글이 읽기 싫어서 나온 단어들이다. 이제는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내용은 궁금한데 일기는 싫다. 그럼 스킵. 그러나 요약이 있으면 그것만 먼저 보고는 대강 글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글의 실체는 요약이 아니라, 당신이 재빨리 스크롤을 내린 그곳에 있다.
 허나 이는 글을 읽는 사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sns에 글을 쓰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의 생각을 한다. 할 말은 많고, 남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는데, 글이 길다면 대부분이 읽지 않고 넘어갈 것이다. 때문에 요약을 쓴다. 글쓴이가 애써 적은 글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대신 글의 위성과도 같은 요약이 주목을 받는다.
 sns는 글을 짧게 쓸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짧게 쓰고 읽고 빨리 다음 글을 봐야한다. 현 자본주의와 많이 닮아있다. 빨리 끝내고 다른 일을 추가로 더 해야한다. 꼭 해야 되는 일이 아님에도 시간을 내서 어떻게든 하려고 한다. 욕심이다.

 sns의 소통은 빠르고 쉽다. 글에서는 글쓴이의 어떤 감정이나 표정, 억양등을 찾아 볼 수 없다. 가볍기 때문에 매우 소모적으로 읽히고 버려진다. 버리기 쉬운 것은 글뿐만이 아니다. 관계도 버려지기 쉽다. sns는 마음에 안드는 상대가 있을 경우, 그 상대와의 감정을 애써 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소식을 안받으면 그만이다. 반면 오프라인에서 마음에 안드는 상대가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든 봐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감정을 풀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것보다 얼굴을 숨기고 대화함에 편의를 느낀다. 대면대화는 무겁다. 상대방의 존재가 바로 인식된다. 소심해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만두고 만다. 그러나 얼굴을 숨기고 대화하는 것은 편하다. 과감해진다. 상대방이 보이지 않으니 그의 존재도 무겁게 인식되지 않는다. 실제로 대면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나 핸드폰이기 때문에.

 남들은 어떻게 사는 지가 궁금하다. 그렇다고 직접 찾아가 소식을 묻기에는 궁금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 사람과의 시간도 잘 잡히지 않는다. 사회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이다. 결국 sns를 통해 사람들의 소식을 접한다. sns의 가장 큰 흥행 원인은 개인보다 사회에 있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일을 강요한다. 무엇을 해라. 심지어는 자기게발서에도 무엇을 하라고 적혀있다. 쉽게 풀어쓰면 '노예가 돼라'. 새로운 것들이 바쁘게 생겨나고 그것들을 탐닉할 인생은 짧게만 느껴진다. 이래서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 없다. 내가 바쁘기 때문에. 결국 다시 sns를 켠다.

 sns는 이렇게 가볍다. 유용하지만 정말 가볍다.

2014년 2월 8일 토요일

SNS

 경기전에 쓰는 소모.

 얼마전, 내가 자주 가던 사이트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회원간의 비방이 문제가 되어 사이트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곧바로 파가 나뉘어 서로를 공격하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분명 한 쪽이 일방적인 잘못을 했음에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약간 폐쇄성을 띄고 있는 이 사이트는 다음 실시간 순위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일에 대하여 많은 회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성찰하였다. 다행히 상처는 곧 지워진 듯이 보인다. 언젠가는 또 고개를 들지 모르는 일이지만.

 사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회원간의 비방으로 인해 서로 크게 다투었던 적이 있다. 급기야는 몇 회원들이 떨어져나가서 다른 사이트를 개설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회원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나쁜 결과가 몇년째 이어짐.
 2. 그로인해 그 결과를 만들어낸 마스터에 대하여 공론이 벌어짐.
 3. 마스터를 옹호하는 회원과 비판하는 회원으로 파가 갈림.
 4. 비판파가 옹호파를 개인들의 sns에서 비난하기 시작.
 5. 훗날 sns비난이 알려지면서 회원간의 다툼이 벌어짐.

 그리고 지금은 가라앉은 상태.

 sns의 전형적인 폐혜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sns는 개인의 공간이자,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있는 광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sns를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는가? sns이용자는 어느정도의 선을 지켜서 행동해야 하는 걸까? 정말로 개인의 공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

 개인적 공간의 예시로는 혼자만 아는 블로그나....일기장이 있다. 특히 일기장. 아무래도 블로그는 인터넷상에서의 활동이다 보니 기록이 남에게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일기장은 자신만의 것이다. 그 누구도 나의 일기장을 쉽게 보지 못한다. 또한 일기장에 내가 무슨 글을 쓰던간에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하여 참견하지 않는다. 교환일기같은 컨셉이 아니고서야 완벽히 폐쇄된 개인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sns는? 내가 처음으로 페이스북을 열었을 때 가장 당황했던 것이, 나와 안면이 있던 없던, 같은 학교나 지역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소개되거나 친구 요청을 해왔던 것이다. 그 사람들이 내가 쓴 글들을 손쉽게 보며 공유까지 할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상의 화제가 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도 모르게 남들이 나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 같아 기분이 오묘해졌다. sns는 결코 개인적 공간일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sns를 하는 목적이 네트워크 상에서의 소통이다. 소통이란 서로가 짝짜꿍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벽을 보고 대화 할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가끔은 sns가 개인의 공간이라며 과격한 글을 일삼아 적는 이들이 있다. 때문에 나온 단어가 스인낭. 원래는 퍼거슨 영감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고 했던 것이 이후에 트인낭으로 줄여 쓰여진 것이었는데, sns의 앞자를 따서 이제는 스인낭이 되었다.
 sns가 개인의 공간으로써 남아 있는 방법도 있다. sns에서 요구하는 출신 학교나 이름, 취미등을 기입하지 않고, 그 누구의 소식도 받아보지 않으며, 내가 소식을 알리지도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는 sns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함정.

2014년 2월 7일 금요일

루시드 폴, 새





 루시드 폴의 1집. 잔잔하고 섬세한 앨범. 

 공돌이의 문과 뺨치는 감수성 그득한 앨범.

 가을에 어울리는 앨범이라, 소개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다. 나는 이 앨범을 기분을 전환시킬 때 듣고는 한다. 무언가 붕 떠서는 좀처럼 무거워지지 못하고 있을 때나, 밤을 거닐다가 반짝이는 별을 하나 겨우 찾고서는 괜스레 마음이 공허해질때. 루시드폴의 연주와 목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동시에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내버려졌다고 해서 외로운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은 고독이다.

 너는 나의 하류를 지난다. 하류를 지난다.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Who watches the Watchmen?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





 Watchmen, 왓치맨은 만화보다도 영화로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 포스터에서 풍기는 (이 포스터는 감독판 DVD 포스터이다. 내가 본 포스터는 극장용 영화 포스터.) 느와르적인 향기에 혹해서 봤다가, 그 액션신의 화려함에 반했던 영화이다. 영화는 그렇다. 로어셰크의 액션신이 아주 멋지게 나온다. 로어셰크가 전부인 영화라고 해도 좋다. 굉장한 명대사들도 쏟아 낸다.

 여아를 강간하고 살해한 범죄자를 죽이며 - "사람이면 체포한다. 그러나 개는 죽인다."

 "멸망을 맞닥뜨리더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권모술수를 꾸며 대량의 인류를 죽이고 사실을 왜곡하여 그 관심을 제 3의 적에게 돌려서, 제 딴에는 인류의 평화(인류끼리 협동하여 외계인과 싸우자는 식.)를 이루어내겠다고 한 오지맨디아스와, 끝내 그에게 협력하는 다른 동료 히어로들 앞에서, 로어셰크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리려하지만, 그러자니 다른 히어로들이 말릴 것 같고, 은폐하자니 신념이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다른 히어로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한다. "Do it!"

 는 로어셰크 덕후의 이야기이고, 왓치맨은 여타의 히어로물과는 조금 다른 주제를 가진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히어로들, 대표적으로 스파이디나 아이언맨, 슈퍼맨이나 박쥐남자 등등도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며 적들과 싸우고는 한다. 영화에서는 잘 그려지지 않지만, 원작 코믹스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왓치맨은 이들과 또 다르다. 더욱 깊이있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시도한다. 주제는 이것이다.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이 말은 감시자들의 힘을 막을 수 없음을 뜻한다. 실제로 왓치맨 작품 내에서도 감시자 역할의 히어로인 '오지맨디아스'는 그의 힘과 명석한 두뇌를 이용하여 대량의 살인극을 펼친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그를 막을 수 있는 히어로는 신과 같은 존재인 '닥터 맨하튼' 뿐이지만, 그를 막으려 했을 때 이미 오지맨디아스는 계획을 실행시켜 뉴욕의 인류를 대거 죽인 뒤였다.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을 먼저 일부 눈치챘던 코미디언도 오지맨디아스에게 죽음을 맞고, 코미디언 살해 사건을 조사하던 로어셰크는 갑작스런 일로 감옥에 수감된다. 이렇듯 감시자는 평범한 시민을 상대로써 보다 강력한 권력이나 힘으로 시민들을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독재적인 힘은 감시자로 하여금, 시민의 동의없이 자의적인 실행을 가능케 한다.

 이 만화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브이 포 벤테타>가 있다. 브이는 시민들의 힘을 이끌어 독재자를 끌어내는 인물이다. 왓치맨의 주제와 상반되는 대목이다. 그것도 같은 만화가가 이렇게 반대되는 주제로 작품을 그려내다니.
 감시자들은 시민에게 감시당할 수 있는가? 시민을 감시하는 감시자는 시민에게 감시당하는 것일까. 현대 민주주의는 어떨까. 민주주의는 시민이 그들의 대표를 뽑는다. 스스로가 자신을 감시할 사람을 뽑는다. 그리고 그 감시자를 지켜보는 것은, 그를 뽑은 시민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상호적인 형태는 서로간의 균형이 맞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시민이건 감시자이건, 누가 힘의 균형을 깨뜨리려고 한다면 이 체제는 금방 와해되고 만다.
 그리고 슬프게도, 대부분의 감시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체제를 와해시키려고 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대한민국 역시 그러하다. 사실 조금 심각한 수준이다. 감시자들을 감시할 시민들은, 힘의 균형이 감시자들에게 기우는 순간, 두 부류로 나뉜다. 겁을 먹는 자와, 균형을 찾기위해 나서는 자. 민주주의 역사는 후자에 의해 쓰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감시자들에게 모든 권한을 맡기는 순간, 그는 오지맨디아스의 모습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2014년 2월 6일 목요일

Blood Sugar Sex Magik


 Red Hot Chili Peppers, 줄여서 RHCP가 메이저로 올라설 수 있게 해 준 앨범.

 앨범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는 섹스 코드가 쫀득쫀득하게 묻어나오는 수작. 레드핫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서 그루브가 강하고 가사도 랩처럼 강렬하게 내뱉는 것이 남성스러운 앨범이다. 뭐 사실 레드핫은 원래 다른 앨범에서도 랩하듯 노래하고는 했다.

 교체 멤버가 매우 빈번한 레드핫 그룹의 특성상, 이 앨범을 완성했을 당시의 멤버도 얼마 안가서 탈퇴하고 만다. 이유는 앨범 한 장으로 메이저로 올라선 것에 회의를 느껴서. 참고로 멤버의 이름은 존 프루시안테.

 다른 레드핫의 앨범의 비해 색체가 빨갛고, 두드러지는 작품이라서, 다른 탱범으로 레드핫을 먼저 접한 후에 이 앨범을 들은 사람들은 갸우뚱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싫다고는 절대 못할걸.

한국에서 연달아 벌어진 3연벙

 1. 여수 기름 유출사고 사실보다 축소. 기업이 한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해양부 ㄷㄷ해. 결국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해양부 장관 오늘 경질.

 2.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라는 있어보이는 이름 아래, 연봉이 2550만원이 넘는 직장인들은 사무직 초과근로수당을 못받는 제도 도입 추진중.

 3. 국정원 댓글선거운동을 축소조작했던 김용판 무죄 오피셜.


 다이나믹 코리아, 다이나믹 창조경제.

2014년 2월 5일 수요일

잠이 안와서 쓰는 영화 이야기 - 로빙화

 로빙화는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영화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 때는 중3의 2학기는 그냥 꿀이었다. 기말고사가 성적에 안들어가기 때문. 때문에 할 일 없는 학생들은 멍하니 있기도 하고, 뭘 다운받아 가져와 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 때, 우리의 잉여로움을 보다 못한 성생님께서 틀어주신 영화가 바로 중국영화인 로빙화.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고 예상하기 쉬워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줄거리로 보는 영화가 아니다. 도시에서 어느 시골마을로 전근을 온 미술 선생님의 철학이 이 영화의 줄거리를 대신한다.
 시골마을에는 한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그 동생이 초등학생으로, 이 미술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어느 미술시간, 이 아이가 그려온 그림이 선생님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냥 보기에는 초등학생 수준의 단순한 그림이지만 선생님은 이 그림이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여, 학교에서 한 명 밖에 출품하지 못하는, 그림경시대회에 그림을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단순하고 유치한 그림보다는, 실사에 가깝게 그린 다른 학생의 그림을 출품시켜버린다. 여기서 선생님은 자신의 철학이 담긴 말을 꺼낸다.
 "그렇게 사실적으로 그릴거면 사진을 찍죠, 왜 그림을 그립니까?"
 결국 미술 선생님은 화를 참지 못하고 다른 선생을 폭행하여 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미술 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아이의 그림을 세계그림경시대회에 출품해놓았었는데, 그 그림은 결국 대상을 받는다. 그러나 그림의 주인은 병세악화로 세상을 떠난 뒤였고, 대신 그의 누나와 아버지가 눈물로 소감을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게 사실적으로 그릴거면 사진을 찍지, 왜 그림을 그립니까?

 멋있는 말이다.
 나는 나의 철학을 무언가에 주입시키지 못하고 그저 보이는 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와 주위 사람들의 존재.

 사람이 가장 감정적이라는 새벽 1시반...은 뻘소리고... 언제인가 내가 자아실현의 욕구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자신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는 걸까. 하지만 그건 굳이 자아실현을 하지 않더라도 이룰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가는 사람은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자아실현의 이유였다. 타인들이 정한 울타리 안에서 만족하며 그저 바닥만 보고 걸어다니는 존재는,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무엇하나 명확하게 아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즐기며 살아갈 수 없다.

 갑자기 이 소리를 왜 하냐면, 지금이 새벽이기 때문이다. 나는 몇 시간 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일을 나가야 한다. 그리고 비슷한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 그렇지만 똑같지는 않을 것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어제와 다르고, 사람들과 하는 대화가 어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도 생각도 전부 다를 것이다. 어제와 비슷하기는 하겠지만.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누구에게 물어보면 좋을까. 나만큼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람 마음은 언제나 색안경을 쓰고 있어서, 자신에게는 보다 관대해지는 법이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물어보자니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그냥 내가 만족하는 선에서 타인의 의견을 듣고 타협해야 하는 것일까. 그럼 결국 주관적인건데.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의 존재에 관하여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 객관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던지 아니던지 간에. 그렇지만 그 사람은 듣기 싫어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내린 평가가 사탕발림이라고 생각하여 손사래를 칠 지도 모른다. 진짜 아닌데. 난 정말 솔직하게 가감없이 말하는데.

 나의 삶은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찰나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늘 긍정과 부정 중간에서 흔들거리며 줄타기 곡예를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전성기이다. 고등학교때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루마다 발전한다고 느꼈고, 항상 1년 후에는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 더 독독해졌다는 말이 아니다. 말이 많아지고,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 편해지는 등의 사소한 변화였다. 그래도 항상 좋은 쪽으로 변화한 것 같아서 항상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오만하고...이상한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내 생각이 그렇다는데, 타인의 생각이야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눈치보이지도 않는다. 날이 갈수록 뻔뻔해져간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아니면 그렇게 거창한게 아니라, 자신의 지금 모습에 대하여 확신이나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크게 돌아봤으면 좋겠다. 내가 쌓아온 것들과 그로 인해 내가 얻게 된 교훈, 내가 발전해 온 방향, 나의 사람들 등등. 난 싹수가 노란 놈이라, 그런 걸 생각할 때면 잘 살아온 삶이라고 자부하고는 한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잘 살아왔는지,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어려운 사람들은 나처럼 교만한 자부심을 얻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보면 분명 칭찬할 거리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는데도 칭찬거리가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 얼마나 착실하게 살아왔는데. 가끔 이러면 칭찬거리보다 자신을 비난할 거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이런 심리인데, 다 지난날에 스스로를 속박해서는 그 그림자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100원짜리 동전을 땅에 묻었다가 다시 파내는 것 만큼이나, 붕어빵을 찾아 민물낚시를 하러 가는 것 만큼이나, 맨유팬이 이번 시즌 우승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다. 과거의 과오는 이미 산산조각난 유리같아서, 자꾸 들춰보이려고 손으로 잡으면 피가 나지만, 그냥 지나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산산조각난 거울의 모습에는 자신의 모습이 비춰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과오를 기억하는 사람은 실수에 대하여 조심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므로, 칭찬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 너는 매사에 신중하구나. 그거 대단한거니까 자신을 갖고 어깨좀 펴고 살아라.

 그래서 글의 요지가 뭐냐.


 나도 궁금하다.


 새벽의 뻘소리.


 힘내세요.

일상

 은 공장일이지 뭐....

 이제 삼일째.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니 충격적이다. 지하구덩이에서 곡괭이질을 하던 카이지의 심정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지루하면서 피곤한지,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하루종일 공장일을 하거나, 조선미녀삼총사를 보는 것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과감히 하루종일 조선미녀삼총사를 보는 걸 선택할 것이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쌈마이한 영화를 보느냐고 할 수 있지만, 공장에서 짱박혀 있다보면 자연스레 세상의 삼라만상에 대하여 억하심정이 생긴다. 그러나 이제 짜증은 나지 않는다. 적응이 된 모양이다. 하하. 짜증을 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전에 소모임 선베님께서 나에게 해 주셨던 설명이 기억난다. 피피티를 만들어 보여주셨다. 짜증과 분노에 대한 내용이었다. 짜증은 혼자서, 커뮤니케이션 없이 하는 행동이지만, 분노는 상대방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짜증을 낼 때, 상대방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짜증을 내지는 않는다. 짜증은 일시적인 감정 소모이다. 짜증을 낸다고 해서 자신의 권익 따위를 위해 대항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잠시 감정을 풀기 위해 혼자서 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러나 분노는 다르다. 분노는 그것이 향하는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표출함으로써, 대상과 내가 어떻게나마 소통하고 문제 해결을 향한 길을 모색하도록 한다. 등록금 인상에 대한 분노로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그러하다. 분노라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분노는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분노해야만 할 때가 있다. 이른바 참참못.

 하지만 세상 만사에 통달하신 분이라면 굳이 분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노를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엉덩국...의 만화 대사 중에 '나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굉장히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어떤 생각없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걱정 하나쯤은 가지고 살고 있으며, 항상 그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건,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걱정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거나 원인을 알아보거나 하는 생각조차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엉덩국의 저 대사는 군자를 넘어선, 도인을 상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엉덩국이 이를 생각하고 저 대사를 썼는지는 모르겠다만은.

나윤선의 Lento

 장르는 재즈.

 앨범평을 좀 더 일찍 적었어야 했는데 뒤늦게나마 적는다.

 앨범의 곡들이 서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강약 조절이 잘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조용하지만 힘이 있다. 재즈라는 장르상 화려하지는 않다. 잔잔하고 침작한 노래들로 구성된 앨범. 많은 사람들이 2013년 최고의 앨범으로 뽑은 앨범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래가 훌륭하지 않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칠흑같은 어두운 공간에 조심스럽게, 또렷이 울려퍼지는 느낌의 곡들은 듣는 사람의 머리를 맑고 편안하게 이끌어준다.

 앨범 수록곡 중에는 모 기업의 광고에서 쓰인 '아리랑'도 있다. 아리랑이 이렇게 구슬픈 가사인지 몰랐다. 아리랑에는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의 한이 꾹꾹 눌러 담겨져 있다.

 '저 하늘에는 별도 많고 내 마음에는 수심도 많다.'

 하루 하나씩 앨범 감상평.

2014년 2월 4일 화요일

가끔가다보면

 감정이 격해져서는 '너도 당해봐야 알지!'라면서 떼를 쓰는 사람이 있다. 슬프게도 의외로 많다. 사람은 고등생물이다. 당하고 난 다음에야 아는 건 금수나 벌레가 할 짓이지... 저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평소에 무슨 생각으로 인생을 사는가 싶다. 떼쓰는 건 엄마한테만 하자. 이렇게 어머니의 주름살은 깊어만 가고...

겨울왕국 흥행 이후로

 노래 좀 한다고 자부하는 여가수들이 Let it go를 커버해서 부르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어떤 가수가 얼마나 잘 부른다고 한들 원곡을 따라갈수가 없다. 그리고 뭐 하나 누가 시도하면 줄줄이 따라가는거 정말 싫어해서 솔직히 보기 싫다. 그래서 안보는중. 예전에 비요네 Single ladies 히트했을때 섹시하다고 자부하는 여가수들이 춤을 따라 췄지만 결과는 뭐 패망...따라할 사람을 따라 했어야지....

2014년 2월 3일 월요일

오늘 했던 생각들

 공장 알바 시작 1일이 지났다. 오전 8시에 나가서 오후 10시에 돌아올 때 느끼는 짜릿함이란....나는 지금 최고로 High한 기분이다!!! 그건 그렇고, 점심과 저녁에 나온 김치가 너무 짰다. 한 조각으로 밥 몇 술은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즈므니...소금즘 그믄 치르그 해쓸튼드......

 이하 오늘 공장 뛰면서 했던 생각들.

 1. 팬은 왜 연예인에게 빠져있는가? 팬과 연예인의 사이만큼이나 불공평한 관계는 드물다. 특히나 요즘은, 6년전부터 범람하기 시작한 아이돌 가수들의 (중공군 같은) 등장으로 팬들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왜 팬들은 그렇게 연예인에게 빠져 있는가?
 여기서 내가 말하는 팬은 일반적으로 '난 누가 좋더라~'하는 식의 팬이 아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를 모으고, 생일과 이름을 외우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콘서트에 가는 팬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이돌 팬들에게 해당되는 소리들이니, 그냥 아이돌 팬들이라고 하자.
 왜 그들은 아이돌에게 빠져 있을까? 실상 팬들은 아이돌을 알아도, 아이돌은 팬을 모른다. 도한 팬이 주는 사랑만큼 아이돌이 되돌려주는 사랑은 거의 없다. 오히려 아이돌의 사랑을 받는 이는 다란 한 사람이다. 바로 그의 연인.... 그리고 SNS의 등장으로 팬과 가수의 사이가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오프라인 상에서는 먼 발치에 지켜보는 애틋한 그대일뿐이다. 쉽게 말해, 팬과 이이돌간의 사이는, 팬이 그만두면 끊어질 인연이다. 근데 왜??? 자본주의의 상술에 넘어가서? 그건 부차적 이유가 될 순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사람의 깊은 의지가 광고와 돈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아직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왜?? 그냥 좋아서? 그냥 좋은 이유가 뭘까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 꿈은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다. 엔터테이너들은 팬들에게 환상을 심어 준다. 팬들은 환상을 먹고 자라며 꿈을 키운다. 그 꿈은 매우 단순한 것도 있고, 크고 방대한 것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꿈을 주는 존재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일 것이다. 팬들에게 연예인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라고 나름 결론은 내보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좋아하니?

 2. 연예인과 팬의 관계에 대해 쓰다가 지금 막 생각난건데, 사실 나도 남말할 처지는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축구 선수 왜 좋아하니?
 나에게 즐거움과 꿈을 주기 때문이다. 매시즌마다 우승이라는 꿈을 준다. 내가 팬질한 이후에는 그 꿈이 이뤄진 적이 없지만, 꿈은 원래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거니까.

 3. 우리는 커피를 마신다. 자주 마신다. 접하기도 매우 쉽다. 카페가 깔려있다. 우리는 커피 문화를 공유한다. 그렇다면 차는 어떤가? 차도 자주 마실까? 거리에 찻집이 깔려있나? 커피는 대중문화가 되었고 차는 서브컬쳐가 되었다. 왜?
 사실 이 생각은 내가 서브컬쳐의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있던 중에, 심심해서 머릿속으로 끄적여 본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커피는 메인스트림이다. 거리에는 카페가 있고,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마신다. 그 시작은 아마 서양 문물에 대한 동경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차가 주류이던 시절, 커피라는 생소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음료에 대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진다. 원래 사람이란 새롭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을 좇고는 하는데, 커피 역시 그러한 역할을 했다. 이는 2000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커피는 더 이상 생소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러나 커피를 듦으로써 풍기는 뉴요커라는...착각...보다도 커피 하나로 서구적으로 자신이 변한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것과 맞물려서, 이상하리만치 엄청난 카페 붐으로 한국은 커피공화국이 되었다. 이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대중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더 이상 커피는 고급 음료가 아니다.
 그러나 차는 고급 음료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차를 찾는 사람들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비록 서브컬쳐계이기는 해도 고급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서브컬쳐는 보통 주류에 대한 반발로 생기기 마련인데, 아마 차 역시 커피가 고급 음료에서 주류가 되어가자, 그것에 대한 반발로써 고급 음료로 거듭나게 된 것이리라...는 주관적인 생각.
 내가 공부한 서브컬쳐에 대해서는 다음에 적어야겠다. 피곤하다 으허

2014년 2월 2일 일요일

요즘 들어 하는 생각.

 내가 가장 무기력함을 느낄 때는, 아끼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을 때이다.

 도움이라도 주면 고맙다고는 하지만, 도움은 누구나 줄 수 있는 것이니까. 내가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 때 공허하고 무기력해서 슬프다. 이럴때는 인생에 치트키를 쓰고 싶다. 해 줄 수 없는 것은 정말 슬프다. 특히나 그 대상이 내가 아끼는 사람일때는.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쉽게만 사는 인생이 재미없다고는 하지만, 쉽게만 살아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고... 적어도 내 경험상 치트키를 쓰면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던데... 게임이 쉽기 때문에 포기하냐, 어려우니까 포기하지....

불 같은 오늘의 포스팅 끝.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원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 대해 적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비틀즈가 생각나면서 오노 요코가 생각도 나고 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베스트 셀러는 국내에서만 몇 종류로 출판되어 있다. 내가 본 것만으로도 세 개의 출판사가 각각 다른 번역가의 능력을 빌어 각각 다른 번역의 책을 내놨다. 가장 유명한 것은 문학사상사의 푸른색 표지를 입은 <상실의 시대>이고, 민음사가 내놓은 <노르웨이의 숲>도 많이 읽혔다. 이외에도 <노르웨이의 숲 1,2권>으로 출판한 출판사도 있었다. 나는 문학사상사와 민음사의 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이미 소유하고 있는 문학사상사의 책을 골라 읽었다.

 <상실의 시대>는 섬세한 글로 쓰여져 있다. 묘사가 뛰어나면서 비유가 좋다. 때문에 나는 책의 줄거리보다도 그 표현력에 집중하면서 읽었다. 이 좋은 표현력은 주인공 와타나베의 심리를 잘 표현해준다. 특히나 와타나베가 느끼는 공허한 감정이 마치 나로 하여금 그것을 추억속에서 끄집어 내듯, 공허함을 공유하게 하는데, 때문에 책을 읽다가 그 공허함에 어이가 없어서 책을 덮고 가만히 몇 십분을 앉아 있기도 했다.
 또는 나오코의 기분속에 스스로 정신을 내던져서는 단순한 복잡함을 느끼며 머리를 아파해보기도 했다. 짧게나마 우울증을 앓아봤던 사람으로서 아주 작게나마 그녀의 감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모순적인 감성 투성이 속에서, 그녀도 혼란을 느꼈고, 나 역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단 와타나베나 나오코 뿐만 아니라, 미도리나 스쳐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도 한번씩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사라진다. 심지어는 와타나베와 원나잇 스탠드를 한 여자까지도 그러하다. 한번 이입이 되면 빠져나오기 힘든 책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또 비틀즈가 생각나버렸다. 노르웨이의 숲 때문이다. 허나 나는 비틀즈의 팬도 아닐뿐더러, 비틀즈를 잘 알지도 못한다. 곡도 몇 개밖에 들어보지 못했다. 헤이 주드나 오블라디오블라다 정도? 비틀즈에 대해 거의 상식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비틀즈만큼 세계 음악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다. 또, 음악은 모두가 그것을 공유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가사를 모르겠어도, 음정과 박자 그리고 분위기 만으로도 우리는 감성을 공유할 수 있다. 음악은 대단한 발명이다. 노래가 언어가 된다. 바벨탑을 쌓기 이전에 세계 공용어는 음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에 앞장선 위대한 비틀즈라는 그룹을 고작 한 여성이 뭉개버리다니. 위대한 업적은 쌓아 놓은 높이 만큼 무너지기도 쉬운 법이다.

시드마이어의 문명 4

 문명5가 나오면서 문명 붐이 일어날 때 즘에 접한 게임.

 실은 문명5는 안해봤고 4만 해봤다. 나에게 여러 고민을 주었던 게임이다. 무엇을 선택하여 어떻게 나라를 발전시켜 나갈지, 시민들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지 생각하면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얻은 교훈은, 대통령은 할 직업이 못된다.

 나는 문명을 하면서 가장 신경쓰인 것이 타국과의 외교이다. 나는 정말 아무짓도 안했는데, 나에게 친밀감을 보이는 국가도 있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국가도 있다. 이들과 짝짜꿍을 하거나 전쟁을 하며 국가를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가장 난감했을 때는 나의 종교를 문제삼았을 때와 무리한 외교를 요구하는 경우였다.

 종교야 사실 개종해버리면 해결될 일이기는 하나, 그렇게 될 경우 다른 국가가 다시 종교를 문제삼는다. 그러니까 만일 내가 천주교도였을 경우, 힌두교도인 타국이 시비를 건다. 그래서 힌두교도로 개종하면 불교인 국가가 시비를 거는 이런 구조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항상 제일 잘나가는 국가의 종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빌붙었다. 1인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에게 빌붙는 것이 살아남는데 가장 유리한 길이었다. 이것이 인생....
 무리한 외교를 요구하는 경우는 문명5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를 순순히 내놓는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패왕 간디의 인도군은 정말 강하다. 때문에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다이아몬드와 옥수수를 맞바꾸어야 했다. 이는 문명4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기계공학을 발전시켜 놓았더니 고작 철지난 왕권신수설같은 제도와 맞바꾸자고 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터무니없는 금액을 내놓거나. 이럴경우, 내가 갑의 입장이라면 바로 거절하면 된다. 그러나 을의 입장이라면 참 난감하다. 나의 모토는 '모두 잘 살아보세'였기 때문에 거절한 적이 거의 없다. 이것도 내가 최강대국일 경우의 이야기이지만.

 가장 짜릿한 승리는 의외로 전쟁에서 온다. 외교로 인한 승리? 정말 재미없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쓰고 싶어서 일부러 유엔 건물을 짓지 않기도 했다. 실제로 일어나면 끔찍한 일이겠지만, 나에게 빌붙으면서도 적대감을 드러내는 몇 국가들이 너무도 꼴보기 싫어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내 미사일을 받아라!

 단순한 게임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문명을 하다가는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다. 나라를 이끄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꼭 해봐야 할 게임.

2014년 2월 1일 토요일

칼스트롬 부상.....

형....

형 아직 연습경기 하나 뛰어놓고......

왜 이래 형.....

Hello americans and germans

 블로그 독자 통게를 보니 네 분의 미국인과 두 분의 독일인께서 들러가셔서 메시지를 남겨봄.

하이포를 찾아 가게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는가

 하이팜과 포가 없어 인화를 못하고 있다. 월요일까지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으...
는 훼이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금본위제도에 대해 알게 된 감상평.

 경제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방대하고 어렵다. 뭐 세상의 어느 학문이나 내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은 것이겠지만, 경제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는 나로써는 경제가 제일 버겁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금본위제도도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세계대전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격과 공포. 돈에 대한 욕망이 경제를 개박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모든 일들은 서로 연결되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는 것도...

 이들에 대해 알아본 것은 좋은 공부가 되었다. 브레튼 우즈도 충공깽이었는데....

내 블로그가 이렇게 접근성이 용이하다니 쇼크

왜 내가 전에 검색해서 들어오려고 했을때는 그렇게 죽어라 검색해도 안나오더니

다른 사람이 찾으니까 짱 쉽게 찾음 짱짱 블로그는 귤이나 까먹으라그래

으아아아아아!!!! 츤데레 블로그신가 얼씨구나 좋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글이나 싸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