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
Watchmen, 왓치맨은 만화보다도 영화로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 포스터에서 풍기는 (이 포스터는 감독판 DVD 포스터이다. 내가 본 포스터는 극장용 영화 포스터.) 느와르적인 향기에 혹해서 봤다가, 그 액션신의 화려함에 반했던 영화이다. 영화는 그렇다. 로어셰크의 액션신이 아주 멋지게 나온다. 로어셰크가 전부인 영화라고 해도 좋다. 굉장한 명대사들도 쏟아 낸다.
여아를 강간하고 살해한 범죄자를 죽이며 - "사람이면 체포한다. 그러나 개는 죽인다."
"멸망을 맞닥뜨리더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권모술수를 꾸며 대량의 인류를 죽이고 사실을 왜곡하여 그 관심을 제 3의 적에게 돌려서, 제 딴에는 인류의 평화(인류끼리 협동하여 외계인과 싸우자는 식.)를 이루어내겠다고 한 오지맨디아스와, 끝내 그에게 협력하는 다른 동료 히어로들 앞에서, 로어셰크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리려하지만, 그러자니 다른 히어로들이 말릴 것 같고, 은폐하자니 신념이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다른 히어로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한다. "Do it!"
는 로어셰크 덕후의 이야기이고, 왓치맨은 여타의 히어로물과는 조금 다른 주제를 가진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히어로들, 대표적으로 스파이디나 아이언맨, 슈퍼맨이나 박쥐남자 등등도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며 적들과 싸우고는 한다. 영화에서는 잘 그려지지 않지만, 원작 코믹스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왓치맨은 이들과 또 다르다. 더욱 깊이있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시도한다. 주제는 이것이다.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이 말은 감시자들의 힘을 막을 수 없음을 뜻한다. 실제로 왓치맨 작품 내에서도 감시자 역할의 히어로인 '오지맨디아스'는 그의 힘과 명석한 두뇌를 이용하여 대량의 살인극을 펼친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그를 막을 수 있는 히어로는 신과 같은 존재인 '닥터 맨하튼' 뿐이지만, 그를 막으려 했을 때 이미 오지맨디아스는 계획을 실행시켜 뉴욕의 인류를 대거 죽인 뒤였다.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을 먼저 일부 눈치챘던 코미디언도 오지맨디아스에게 죽음을 맞고, 코미디언 살해 사건을 조사하던 로어셰크는 갑작스런 일로 감옥에 수감된다. 이렇듯 감시자는 평범한 시민을 상대로써 보다 강력한 권력이나 힘으로 시민들을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독재적인 힘은 감시자로 하여금, 시민의 동의없이 자의적인 실행을 가능케 한다.
이 만화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브이 포 벤테타>가 있다. 브이는 시민들의 힘을 이끌어 독재자를 끌어내는 인물이다. 왓치맨의 주제와 상반되는 대목이다. 그것도 같은 만화가가 이렇게 반대되는 주제로 작품을 그려내다니.
감시자들은 시민에게 감시당할 수 있는가? 시민을 감시하는 감시자는 시민에게 감시당하는 것일까. 현대 민주주의는 어떨까. 민주주의는 시민이 그들의 대표를 뽑는다. 스스로가 자신을 감시할 사람을 뽑는다. 그리고 그 감시자를 지켜보는 것은, 그를 뽑은 시민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상호적인 형태는 서로간의 균형이 맞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시민이건 감시자이건, 누가 힘의 균형을 깨뜨리려고 한다면 이 체제는 금방 와해되고 만다.
그리고 슬프게도, 대부분의 감시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체제를 와해시키려고 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대한민국 역시 그러하다. 사실 조금 심각한 수준이다. 감시자들을 감시할 시민들은, 힘의 균형이 감시자들에게 기우는 순간, 두 부류로 나뉜다. 겁을 먹는 자와, 균형을 찾기위해 나서는 자. 민주주의 역사는 후자에 의해 쓰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감시자들에게 모든 권한을 맡기는 순간, 그는 오지맨디아스의 모습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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