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는 말로 하는 것과 글로 하느 것이 있다. 말로 하는 것은 다시 나뉜다.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는 것과 전화등의 수단으로 목소리로만 대화하는 것. 대면하여 하는 대화는 소리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 등을 동반하여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목소리로만 대화하는 경우에는 표정이나 몸짓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목소리의 높낮이라던지, 억양 등이 동반된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목소리 뿐만이 아닌, 표정이나 몸짓, 억양 등으로 우리는 상대방의 대화 주제 뿐만 아니라 ,감정도 어떤지 알 수가 있다.
글로하는 소통은 좀 다르다. 도서로 하는 소통이나 이메일, 편지, sns등이 속한다. 도서나 이메일, 편지 등은 글의 무게가 보다 무겁다. 여러번 생각을 하고, 글을 가다듬어 마침내 최종적인 글이 완성되면 그것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도서나 편지는 손글씨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마다의 개성있는 필체를 맛볼 수 있다. 필체에 상대방의 감정이 묻어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메일과 sns의 경우는 필체가 획일적이다. 모두 같거나 비슷한 필체를 쓰게 된다. 자판을 두드려 쓰는 글은, 필체보다 글의 내용에서 개인의 개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고작 한 두 줄 적는 경우에는 그나마도 드러나지 않고는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sns는 긴 내용의 글을 원하지 않는다.
요약바람. 세줄 요약. 긴 글이 읽기 싫어서 나온 단어들이다. 이제는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내용은 궁금한데 일기는 싫다. 그럼 스킵. 그러나 요약이 있으면 그것만 먼저 보고는 대강 글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글의 실체는 요약이 아니라, 당신이 재빨리 스크롤을 내린 그곳에 있다.
허나 이는 글을 읽는 사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sns에 글을 쓰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의 생각을 한다. 할 말은 많고, 남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는데, 글이 길다면 대부분이 읽지 않고 넘어갈 것이다. 때문에 요약을 쓴다. 글쓴이가 애써 적은 글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대신 글의 위성과도 같은 요약이 주목을 받는다.
sns는 글을 짧게 쓸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짧게 쓰고 읽고 빨리 다음 글을 봐야한다. 현 자본주의와 많이 닮아있다. 빨리 끝내고 다른 일을 추가로 더 해야한다. 꼭 해야 되는 일이 아님에도 시간을 내서 어떻게든 하려고 한다. 욕심이다.
sns의 소통은 빠르고 쉽다. 글에서는 글쓴이의 어떤 감정이나 표정, 억양등을 찾아 볼 수 없다. 가볍기 때문에 매우 소모적으로 읽히고 버려진다. 버리기 쉬운 것은 글뿐만이 아니다. 관계도 버려지기 쉽다. sns는 마음에 안드는 상대가 있을 경우, 그 상대와의 감정을 애써 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소식을 안받으면 그만이다. 반면 오프라인에서 마음에 안드는 상대가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든 봐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감정을 풀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것보다 얼굴을 숨기고 대화함에 편의를 느낀다. 대면대화는 무겁다. 상대방의 존재가 바로 인식된다. 소심해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만두고 만다. 그러나 얼굴을 숨기고 대화하는 것은 편하다. 과감해진다. 상대방이 보이지 않으니 그의 존재도 무겁게 인식되지 않는다. 실제로 대면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나 핸드폰이기 때문에.
남들은 어떻게 사는 지가 궁금하다. 그렇다고 직접 찾아가 소식을 묻기에는 궁금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 사람과의 시간도 잘 잡히지 않는다. 사회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이다. 결국 sns를 통해 사람들의 소식을 접한다. sns의 가장 큰 흥행 원인은 개인보다 사회에 있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일을 강요한다. 무엇을 해라. 심지어는 자기게발서에도 무엇을 하라고 적혀있다. 쉽게 풀어쓰면 '노예가 돼라'. 새로운 것들이 바쁘게 생겨나고 그것들을 탐닉할 인생은 짧게만 느껴진다. 이래서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 없다. 내가 바쁘기 때문에. 결국 다시 sns를 켠다.
sns는 이렇게 가볍다. 유용하지만 정말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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