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우리는 모두 반대할 준비가 되어있다.

 몇 일 전 썼던 사이트 내의 회원간 갈등 문제로 인해 나는 여러 의견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조그마한 사이트에서도 파벌을 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씁쓸하였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나는 그러한 분쟁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소크라테스의 말을 되새겼다. 무지의 지는 앎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의견의 대립이 이루어진다. 대립 후 화합을 이루어내거나 그대로 갈라서버린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과오나 잘못된 지식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이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사견을 관철시키려다가 결국에는 연대를 깨어버린다. 본인의 과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상대방의 의견에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주제와 관련된 타인의 다른 생각에 반대를 한다. 그는 언제나 반대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

 반대를 하기 위해서는 그 주제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주제에 대해 논쟁을 하기 이전에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상식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혹여나 틀리진 않았는지, 어떤 새로운 사안이 있는지를 알아본다. 억측을 일삼는 사람들은 이러한 준비운동을 하는가. 그들의 조사 범위는 항상 그들의 생각이 닿는 범위까지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자료만을 조사한다. 그 후 이어지는 것은 맹신이다.

 자신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자료들을 열심히 찾다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자료를 왜곡하기도 한다. 왜곡된 자료를 들고 나와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 반박할 경우, 별다른 재반박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료를 맹신해버린다. 무조건 이 자료가 맞다. 갓난아기 수준의 안타까운 사고이다. 스스로도 조사를 하다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에도 애써 고개를 젓는다. 진실을 깨달았음에도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비참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모여서 큰 불을 밝히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모여서 큰 불을 모함한다. 어리석기에 현명한 이들을 앞질러갈 수는 없지만 더럽힐 수는 있다. 때문에 항상 더렵히려고 한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존재에 대한 생각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조목조목 반박당하면, 괜히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자존심이 구겨진다. 상대방이 누구든 간에 내가 더 잘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잘난 나의 의견을 부정하다니,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사이클은 돌고 돌아 제 살을 깍아먹기에 이른다. 자신의 눈에야 자신이 잘나보이고, 무엇이든 맞는 말을 하는 것 같겠지만, 안타깝게도 타인의 정상적인 시각에서는 그만큼 피곤한 인간이 없다. 끝내 자신의 의견이 완파될 경우에는 상대방의 결점, 환부를 들춰낸다, 말꼬투리를 잡아가며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상대방을 더럽힌다. 내가 오르기보다 남을 내리는 것에 집중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그는 반대할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반성해야 한다. 나는 이런적이 없었는지. 나도 무언가에 휩싸여서는 타인에 대한 말에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코웃음치지는 않았는지. 꽤 많이 그랬던 것 같은데. 엄청난 자만심으로 갑옷을 챙겨입고는 철면피를 쓴 채 귀를 막아버렸던 기억이 여럿 있다. 그나마도 내가 기억하는 게 이정도인데, 사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항상 웃음이 넘치는 연대는 없다. 분명히 고비를 맞을 때가 있을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무지를 감추려고 무딘 애를 써왔다. 앎으로 가는 지름길을 봉쇄시켰다. 결국 연대는 깨지고, 자신은 독불장군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먼저 내민 손을 뿌리치는 순간 사태는 훨씬 악화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이다. 사실은 지금도 알아가는 중이다.

 반박할 것이 없으면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하라는 누군가의 말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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