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목요일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2001년,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세상은 온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걷고 있었다. 2001년의 대한민국은 그렇지는 못했을 것이다. 월드컵 준비로 소란스러웠을 것인데다가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국민들은 벌써부터 들떠 있었을테니까. 아무튼 세계는 고요히 흘러갔다. 오사마 빈라덴이 테러를 감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FBI를 비롯한 정보국들은 이전부터 미국 수뇌부에 테러의 위험성을 역설해 왔었다. 그러나 미 수뇌부는 이를 한귀로 흘려 듣고 말았고, 결국 9월 11일, 납치된 비행기가 고층 타워에 그대로 들이받혀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3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9.11테러로 시작한다. 주인공 오스카는 자상한 아버지를 둔 평범한 소년이다. 오스카의 아빠, 토마스는 늘 오스카와 친구처럼 놀아주며 가끔은 인생의 중요한 단서를 던져놓기도 했다. 오스카는 그런 아빠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러나, 9월 11일, 학교에 있던 오스카는 선생님으로부터 집으로 조기 귀가하라는 말을 듣는다. 집에 돌아온 오스카는 어리둥절한채 엄마의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몇일 후, 아버지가 고층 빌딩타워에서 테러로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오스카와 그의 엄마, 할머니는 토마스를 잃었다는 사실에 슬픈 시간을 보내지만, 다시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준비를 하기 시작하고, 그러던 어느 날 오스카는 아빠의 서재에 갔다가 물병 하나를 깨뜨린다. 그 속에는 열쇠와 함께 'Black'이라고 쓰여진 글씨가 있었다. 오스카는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쇠의 주인 'Black'을 찾기 위해 뉴욕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당시 미국의 상황과 오스카, 그리고 그와 만나는 많은 'Black'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뿐만 아니라 오스카의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로 특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세계대전이라는 이전세대의 큰 아픔에 의해 병이 들고, 서로 상처주기도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고와 방식대로 삶을 재수습해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그중에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도 있고, 나름대로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도 있다. 잊을만하면 어디에선가 불현듯 고통을 주는 아픈 기억에 상처가 벌어지지만, 소금을 뿌리고 연고를 바르며 매일을 버텨나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제 나름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된다.

 나쁜 기억은 나에게 상처를 준다. 또한 나는 나쁜 기억으로 인한 상처를 타인에게 주기도 한다. 모두 지나갈 일이라지만,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나의 기억 속에서는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늘 잊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이럴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유대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의 아픔을 잘 이해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스카가 만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블랙들은 모두 오스카와 유대를 맺는 사람들이다. 블랙들은 오스카와 함께 다른 블랙을 찾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기도 하며, 오스카를 위해 울어주기도 한다. 블랙들은 오스카를 도우면서 자신들도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9.11이라는 뜨거운 사안에 대하여, 정치적인 내용대신 작은 소년의 눈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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